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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094
한자 浦口
영어공식명칭 Inlet
이칭/별칭 항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추윤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배가 드나드는 해안이나 하천의 어귀.

[개설]

당진시는 북쪽으로는 아산만을, 동쪽으로는 삽교천을, 서쪽으로는 대호만을 접하고 있다. 아산만은 내륙 깊숙이 만입(灣入)되어 있으며 삽교천과 안성천이 만나는 하류에 위치하여, 하천에 의한 수로(水路)와 바다를 이용한 해로(海路) 모두 편리한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또 충적 평야 지대 한가운데를 삽교천, 역천, 남원천이 흐르고 있어 곡물 반출용 혹은 새우젖배 운항, 신탄 반출, 연평도까지 조기잡이를 위한 출항지로서 포구가 주로 이용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진, 부리포, 남원포, 오도항 등지에서 증기선이 인천으로 정기적으로 다녔으며, 특히 한진은 일본으로 쌀 반출 항구로서 유명했다. 이러한 해안 포구들은 또 한편 아산만을 가로질러서 대안의 평택 만호리나 남양의 고온포나 남포를 통하여 한양이나 경기 지방으로 가는 통로로 이용되었다.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 복거총론 생리 조에서 내포 지방에서는 아산의 공세호(貢稅湖)와 덕산의 유궁포(由宮浦), 홍주의 광천(廣川), 서산의 성연(聖淵)을 유통이 활발한 포구로 들고 있다. 공세호는 현재의 아산시 공세곶, 광천은 현재의 홍성군 광천 옹암포(甕岩浦), 성연은 현재 서산시 성연의 명천포(鳴川浦)를 말한다. 이 가운데 삽교천에 있는 포구는 덕산의 유궁포뿐이다. 유궁포는 옛 덕산군 비방곶면으로 삽교천 변에 월경지(越境地)로 있었던 면이며, 현재의 당진시 합덕읍 점원리 융진(戎津)을 가리킨다.

[포구의 역할]

대내산진(大迺山津)이 공세곶포(貢稅串浦), 시진(市津)이 시포(市浦)로서, 처음에 나루[津]였다가 포구[浦]로 그 기능이 확대된 경우도 있고, 당포(堂浦)가 당포(唐浦)로 한자 지명이 상이한 경우도 있으며, 중방포(中防浦)가 단장포(丹場浦)로 지명 자체가 완전히 바뀐 사례도 있다. 즉, 주로 도하(渡河)의 기능을 담당하는 ‘나루’에서 상업적 기능이 강화된 ‘포구’로 점차 확대되어 갔다.

또 한편 포구는 상품 유통의 한 통로였을 뿐만 아니라 지역 간 정보와 쇄신의 소통로이기도 하다. 포구를 매개로 상류와 하류 간 지역 문화를 지리적으로 통합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포구가 주변 사람들에 폭 넓게 사용되면 그 포구 유역은 문화 등질(文化等質) 지역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당진 지역의 포구]

당진 지역은 삽교천, 역천, 남원포 및 아산만 해안가에 포구가 주로 발달되었다. 삽교천 주변의 포구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9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9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16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12개 등 상당히 많이 분포하고 있다. 삽교천에는 범근내포를 비롯하여 강문포, 암두포, 유궁진, 하리 포구 등이 있고, 역천에는 오도항, 보덕포, 채운포, 관음포 등이 있으며, 남원천에는 남원포, 홍주북창포 등이 있다. 아산만 해안가 포구로는 신평면의 운정포, 맷돌포, 송악읍한진, 송산면성구미 포구, 안섬 포구 등이 유명하다.

삽교천 연변에 있는 포구들은 처음에 조운(漕運)을 주 기능으로 하였다. 해로를 통한 조운은 여말 선초 왜구의 빈번한 출몰, 혹은 험한 조류에 의한 잦은 선박의 침몰 사고로 인해 최대한 육로를 통하여 정해진 포구까지 수송하고, 그곳에서 수로(水路)[삽교천]~해로(海路)[서해]~수로(水路)[한강]를 통하여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삽교천 일대가 수운 교통이 편리하며, 주변에 넓은 곡창 지대를 이루고 있어 장삿배들이 찾아와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삽교천 변에 포구가 이처럼 많다는 것은 수운 교통량의 증가, 물자 유통의 확대, 인걸(人傑)의 왕래가 빈번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과거 내포 지역의 중심인 당진, 면천 지역이 생기 넘치는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행정 중심지인 면천은 내륙에 있지만 삽교천 지류인 남원천이 깊숙이 면천읍성 주변까지 들어와서 삽교천을 거쳐서 아산만으로 쉽게 통할 수 있는 교통의 이점이 있었다.

[포구와 조운제도]

당진의 해안가나 삽교천 연변에는 '창(倉)' 계통의 지명이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순성면 중방리 북창(北倉), 우강면 창리(倉里), 합덕읍 합덕리 창촌(倉村), 송산면 당산리 송리북창(松里北倉), 고대면 당진포리 해창(海倉), 신평면 초대리 소창(小倉), 석문면 삼화리 외창(外倉), 우강면 내경리 둔창(屯倉) 등이다.

'창(倉)'은 옛날에 세금이나 진상품을 받아들일 때 곡물과 같은 현물세를 일시 보관하는 일종의 창고를 말한다. 이 창고에 보관된 현물 세곡을 선박을 통하여 한양으로 옮기는 제도를 조운(漕運)이라 하고, 이런 창고를 특히 조창이라 한다. 옛날에는 육상 교통의 발달이 미약하고 도로가 거의 없어서 강이나 바다를 이용해서 이런 세곡을 실어 날랐다. 따라서 이런 창이 있는 곳에는 예외 없이 주변에 포구가 발달되었다.

조운이란 현물로 받아들인 각 지방의 조세를 선박으로 한양까지 운반하는 제도로 조전(漕轉), 해조(海漕) 등으로 불린다. 이때 해안가에 있어 해상 운송을 맡은 조창을 해운창, 하천변에 있는 강상 운송을 맡은 조창을 수운창이라 한다. 이런 창이 설치되어 있던 곳에는 하천이나 바다나 예외 없이 포구가 발달되었다.

조운 제도는 고려 시대부터 제도화되어 13창이 있었으나 고려 말기에 왜구의 약탈로 말미암아 전폐되다시피 되고 육로로 운송을 하게 되어 조창이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들어와 조운 제도가 다시 정비되어 주로 황해도 예성강에서 전라도 섬진강 사이의 서해안에 조창이 설치되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조창의 기능이 약화되다가 19세기에 와서 조창 자체가 혁파되었다. 각 지방의 조창에서 수납된 조세는 모두 한양의 경창으로 집결되었다. 삽교천우강면 부리포 범근내포에서 홍주, 공주목 소속의 군현 조세를 모았다. 경창은 용산 등 한강 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군자창, 광흥창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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