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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297
한자 調琴里
영어공식명칭 Jogeum-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오숙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 조금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57년 11월 6일 -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 조금리에서 충청남도 당진군 대호지면 조금리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2012년 1월 1일 - 충청남도 당진군 대호지면 조금리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5.259㎢
가구수 220세대
인구[남/여] 467명[남자 233명, 여자 234명]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옛 해미군 서면 조금진리 지역으로 조금 초등학교 뒤에 있는 청룡산이 옥녀 탄금형(玉女彈琴形)이고 앞산이 거문고를 고르는 형이며, 서편에는 바다가 있어 서산시 지곡면과 대산읍 및 인천과 왕래하는 나루터가 있었기에 조금진리라 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출포리 일부를 병합하여 조금리(調琴里)라 해서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입하였다가 1957년 대호지면을 당진군에 편입하였다.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해서 대호지면정미면과 함께 서산군에서 당진군으로 편입되었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로 개편되었다.

[자연 마을]

차령 지맥인 가야산 줄기를 타고 자모산성을 지나 어염(漁鹽)이 풍부한 내포 조금 나루에서 터를 잡은 조금리의 자연 마을은 8개이다.

윗말은 조금 나루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부터지는 용수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부자의 터가 있다 하여 ‘부터지’라 했다. 동편에 지름이산이 있고, 그 밑에 대호 RPC[미곡 종합 처리장]가 있다. 용수말은 조금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로 부터지의 북쪽에 있다. 옛날에 용수말에서 용이 나왔다 하며, 공동 우물 앞에서 정신 용왕에게 행운, 장수, 복록을 빌었다. 연안 차씨 강열공 후손 제실이 있다. 수근터는 용수말 서쪽에 있는 마을로 갑오 농민 전쟁 때 사람들이 이 곳에 숨어서 피난하였다 하여 '숨은대'라고 하였고, 다시 '수근터'가 되었다. 지망궂이는 수근터 서쪽에 있는 마을로 지씨가 살다가 망해서 나갔다 하여 금황동이라고 한다. 안골은 용수말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아늑한 곳에 위치하였다. 잿말은 용수말의 서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에 수백 년 된 고목이 있는 재가 있다. 개건너는 잿말 남쪽에 있는 마을로 바닷가의 개 건너에 있었으나 지금은 막혀서 논이 되었다.

[현황]

2016년 11월 기준으로 조금리의 면적은 5.259㎢, 가구 수는 220세대, 인구수는 467명[남자 233명, 여자 234명]이다. 조금리에는 마을 회관, 경로당, 초등학교가 있다.

조금리는 1866년 남연군의 묘소 도굴 주범 오페르트가 2월에 로나호, 7월에 엠페러호를 타고 2차례에 걸쳐 조금진리에 상륙하여 해미 현감 김응집과 만나 통상을 요구하다 거절당하고 돌아간 곳으로 유명하다. 1919년 4월 4일에 대호지 면민 600여 명이 모여 독립 선언식을 하고 이에 천의 장터까지 만세 운동을 하였다. 광복 후 짧은 일생을 조국에 바친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비를 세웠으며, 창의사를 세워 매년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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