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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28
한자 南氏兩世忠臣旌閭
영어공식명칭 Memorial Monument for Nam Clan Two Generation
이칭/별칭 남유·남이흥 충신 정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남기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27년 9월 - 남이흥 정려문 받음
건립 시기/일시 1790년연표보기 - 남유·남이흥 충신 정려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59년 4월 - 남씨 양세 충신 정려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9년 10월 - 남씨 양세 충신 정려 중수
현 소재지 남씨 양세 충신 정려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1길 73-54[도이리 373-1]
원소재지 남씨 양세 충신 정려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1길 73-54[도이리 373-1]지도보기
성격 정려
정면 칸수 2간
측면 칸수 1간
소유자 의령 남씨 충장공파 문중
관리자 남주현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남이흥과 아버지 남유의 충신 정려.

[개설]

남이흥(南以興)[1576~1627]은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평안도 안주에서 후금(後金)과 싸웠으나 상황이 어려워지자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전사한 인물이며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남이흥의 아버지인 남유(南瑜)[1552~1598]도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있으면서 충무공 이순신을 도와 왜군과 싸우다 1598년(선조31)에 노량 해전에서 전사한 강직한 무인으로 사후 좌의정에 증직되었다.

[위치]

남씨 양세 충신 정려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1길 73-54[도이리 373-1] 묘역 앞 충장사 사당 아래쪽에 있다.

[변천]

남유·남이흥 부자는 1627년(인조5) 9월에 왕명으로 정려와 가옥을 하사받았으며, 1790년(정조 14) 9월 하순에 정려문의 정려각을 건립하고 양세 충신 정려라고 하였다. 1859년 4월과 1929년 10월에 중수를 했다.

[형태]

남씨 양세 충신 정려각은 정면 2간, 측면 1간의 우진각 지붕 건물이며 충신각 내에는 현판이 있다. 형태는 모두 붉은색으로 윗부분은 남유 충신 정려 현판으로 조금 작고, 아래쪽은 남이흥 충신 정려 현판으로 남유 정려보다 조금 크다. 내용은 사후 증직된 관호와 직급, 실지 직급, 그리고 공적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

상단 정려인 남유 정려에는 '충신 증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 겸 영경연사 의천 부원군 행 나주 목사 나주진 병마첨절제사 남유지문 신묘 정월 초칠월 명정려(忠臣 贈 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 大匡輔國 崇祿大夫 議政府 左議政 兼 領經筵事 宜川府院君 行 羅州牧使 羅州鎭兵馬僉節制使 南瑜之門 辛卯 正月 初七月 命旌閭)'라고 한자로 쓰여져 있다.

하단 정려인 남이흥 정려에는 '충신 증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 겸 영경연사 의춘부원군 행 갈성분위출기효력진무공신 숭록대부 평안도 병마 수군절도사 겸 양서 순변사 영변 대도호부사 의춘군 증 시 충장공 남이흥지문 천계 칠년 구월일 명정려(忠臣 贈 大匡輔國 崇祿大夫 議政府 左議政 兼 領經筵事 宜川府院君 行 竭誠奮威出氣效力振武功臣 崇祿大夫 平安道兵馬水軍節度使 兼 兩西巡邊使 寧邊大都護府使 宜春君 諡 忠壯公 南以興之門 天啓 七年 九月 日 命 旌閭)'라고 한자로 쓰여 있다.

[현황]

남이흥 정려는 1627년(인조 5) 9월에 왕명으로 가옥과 함께 하사받고 정려각은 1790년(정조 14) 9월 하순에 건립된 것이다. 아버지 남유의 정려는 ‘신미(辛未)’라는 글자만 확인되고 있어서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1631년(인조 9)에 명정을 받았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려각의 크기는 다른 정려각 규격보다 한칸이 더 있는데, 그것은 양세 충신이기 대문이다. 정려각 전면 아래쪽은 돌벽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는 홍살(紅箭)이 설치되어 있다. 원형은 변함이 없으며 외부 지붕이나 내부가 훼손되면 원형 그대로 문화재청에서 주기적으로 점검해 중수를 한다.

[의의와 평가]

남씨 양세 충신 정려는 애국 충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남유·남이흥 부자에게 왕명으로 내려진 정규격의 부자 충신 정려문 정려각이다. 근대에 이르러 남유의 후손 중 조선시대 관료 출신이 105명이며, 독립운동가로 건국 훈장을 받은 사람이 17인이다. 조선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가문의 애국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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