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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75
한자 倉宅山烽燧址
영어공식명칭 Site of Beacon Fire Station in Changtaeksan
이칭/별칭 봉화산 봉수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학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조선 초 - 고려말 조선초 봉수제도 확립
폐지 시기/일시 조선 말 - 통신 우편도입으로 기능 폐지
소재지 창택산 봉수 터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도문리 지도보기
성격 봉수 터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변천]

봉수제(烽燧制)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통신 수단이었다. 특히 고려 말에 왜구를 방어할 목적으로 봉수제가 강화되었는데, 조선 시대에는 태종 때에 이르러 이미 봉수제가 실시되고 있음을 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1406년(태종 6) 12월에 조수일(曺守一) 등을 거제현(巨濟縣) 봉졸로 장배(杖配)하였다고 하고, 1408년 1월에는 연해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만호(萬戶)와 천호(千戶) 등을 단속할 목적으로 해도 찰방(海道察訪)을 하삼도(下三道)에 보내면서 "봉화로써 해상을 간망함은 군사상 긴요하므로 만약 이를 소홀히 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엄중히 다루라"고 지시한 바가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던 당진과 면천군에도 일찍부터 봉수대가 세워지고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택산 봉수(倉宅山 烽燧) 터와 연결된 고산 봉수는 조선 시대 주요한 통신 수단 중 하나로 기능을 해 오다 개화기를 맞아 기능을 상실하였다. 개화기에 들어온 기차는 교통의 발전을 이루었고, 전보와 우편은 그동안 통신 기능을 담당하던 봉수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로써 고산 봉수도 더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폐지되었지만 그 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위치]

창택산 봉수 터송산면 창택산[봉화산 또는 명해산]의 꼭대기에 있었으며 서쪽으로는 당진 고산 봉수, 북으로는 경기도 양성현 괴대길곶[현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원정리] 봉수와 연결되어 있었다. 창택산 봉수에 관한 기록으로 『충청도 읍지』 면천군 조에 보면 "창택산 봉수는 감천면에 있는데 군의 북쪽으로 40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현재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도문리 경계에 있는 창택산 정상이다.

[현황]

현재 송산면 삼월리도문리 경계에 ‘봉화산’이라 불리는 산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창택산이다. 산 정상에 봉화 터로 보이는 흔적이 있는데 창택산 봉수 터로 알려져 온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당진 지역 관방 유적의 모습과 운영 체계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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