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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96
한자 無名殉敎者墓
영어공식명칭 Nameless Martyr’s Tomb
이칭/별칭 신리 성지 무명 순교자의 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산2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정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장 시기/일시 1972년연표보기 - 32기의 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254-8번지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산21 시립 공동묘지로 이전하여 6개의 봉분으로 합쳐 묻으면서 ‘목이 없는 무명 순교자 묘’라 명명
이장 시기/일시 1985년연표보기 - 14기의 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120-8번지에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산21 시립 공동묘지로 이장하여 '손씨 가족 무명 순교자 묘’라 명명
이장 시기/일시 2014년 3월 29일 - 시립 공동묘지 내에서 무명 순교자 묘를 다시 이장
현 소재지 당진시립 공동묘지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산21 지도보기
원소재재 말바탱이 묘역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120-8 지도보기|충남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254-8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십자가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신리 지도보기
성격 신리 성지 일대 순교자들의 묘
양식 전통 무덤
관련 인물 손자선|손경서
소유자 신리 성지
관리자 신리 성지

[정의]

병인박해 시기에 순교한 충청남도 당진시 신리 성지 일대 천주교 순교자들의 묘.

[개설]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신리신리 성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1.5㎞에 있는 무명 순교자 묘[합덕읍 대전리]는 신리를 중심으로 한 주변의 순교 역사와 관련이 있는 무덤들이다.

[위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산21번지 시립 공동묘지 내에 있다.

[변천]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기 직전 신리는 주민 400여명이 모두 신자인 교우촌이었다. 이 교우촌은 밀양 손씨 집안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다른 성씨를 가진 많은 신자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1866년에 시작된 병인박해는 흥선 대원군이 권좌에서 물러나는 1873년까지 계속된 참혹한 박해였다. 이 박해로 신리에 거주하던 신자들은 체포되어 순교하거나 다른 지방으로 피난해야만 했다. 그 결과 박해가 끝난 후 신리는 한 명의 신자도 살지 않는 마을로 변해있었다. 이 박해 과정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으나 대부분 이름이 밝혀지지 않아 무명 순교자들로 분류된다. 신리 인근의 대전리에 형성된 무명 순교자 묘는 이런 배경 아래서 생겨났다.

옛 이름으로 ‘말바탱이’라 불리던 대전리 120-8번지에는 밀양 손씨 집안의 문중 묘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는데 그중 14개기가 순교자의 묘로 알려져 있었다. 그곳에는 1839년에 순교한 손경서와 병인박해 때 순교한 손자선 등 여러 손씨 집안 순교자들이 묻혔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그곳에서 멀지 않은 대전리 254-8번지에는 32기의 무덤들이 있었는데 밀양 손씨가 아닌 신리 출신 순교자들의 묘로 전해지고 있었다. 두 묘역은 서로 구분되어 있으나 모두 순교자들의 묘로 알려져 있었고,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각각 다른 시기에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에 있는 시립 공동묘지로 옮겨졌다. 32기의 묘는 1972년에 이장될 때 유해가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기에 6개의 봉분으로 합쳐 묻으면서 ‘목이 없는 무명 순교자 묘’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14기의 묘는 1985년에 이장되면서 ‘손씨 가족 무명 순교자 묘’라 명명되었다. 이 20기의 무명 순교자 묘는 2014년 3월 29일 묘지 관리 차원에서 시립 공동묘지 내에서 또 한 차례 이장되었다.

[형태]

한국식 전통 묘지이다. 이장 시 십자가가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무명 순교자 묘신리 성지와 더불와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지로 알려지고 있으며 1866년의 병인박해를 인식하고 연구하는데에도 좋은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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