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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586
한자 金震厚
영어공식명칭 Gim Jinhu
이칭/별칭 김진후 비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정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38년연표보기 - 김진후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14년 12월 1일연표보기 - 김진후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4년 8월 16일 - 김진후 복자 서품
출생지 김진후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솔뫼 성지]지도보기
성격 종교인
성별
대표 경력 복자(福者)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개설]

김진후(金震厚)[1738~1814]는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솔뫼에서 태어났다. 족보상의 이름은 운조(運祚)이고, 천주교 세례명은 비오[Pius]인데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이다.

[활동 사항]

김진후의 집안은 솔뫼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었다. 1784년(정조 8)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이 내포 지역에 천주교를 전하면서 김진후의 집안도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김진후는 맏아들이 제일 먼저 신앙을 받아들였을 때 처음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다가 입교한 후에는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였다. 김진후는 본래 하급 관리직에 종사하고 있었으나 신앙생활을 위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입교 초기에는 큰 난관에 부딪히지 않았으나 1791년(정조 15) 이후 김진후의 집안은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그해에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에서 윤지충[세례명 바오로]이 제사를 거부한 사건으로 촉발된 ‘신해 박해’로 말미암아 내포 지역도 박해를 받았다. 내포의 주요 신자들이 체포되는 가운데 김진후도 네다섯 차례 검거되며 심문과 석방을 반복하였다.

순조 임금의 등극과 더불어 시작된 1801년 신유박해는 양상이 달랐다. 그해에 김진후는 다시 한 번 체포되었고, 형벌을 못 이겨 배교하여 목숨은 건졌으나 유배형을 받았다. 얼마 후 유배형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지만 1805년 다시 체포되어 해미[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로 압송되었다. 그때부터 김진후는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켰으며, 그 결과로 오랜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다. 김진후의 감옥 생활은 10여 년 동안 이어졌는데 그동안 모범적인 생활로 관리와 옥리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연로한 나이에 감옥 생활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 1814년 12월 1일 해미 옥에서 7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사상과 저술]

김진후는 1780년대 후반 솔뫼에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비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묘소]

김진후의 묘소는 따로 없지만 솔뫼 성지에서 매일 미사 때마다 성인과 복자들 이름으로 호칭 기도를 올리고 있다.

[상훈과 추모]

김진후는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된 시복식(諡福式)에서 복자품(福者品)에 올랐다. 전날인 8월 15일에 교황은 솔뫼 성지를 방문한 바 있는데, 김진후김진후의 집안이 신앙을 받아들이고 생활한 솔뫼가 한국 천주교 역사 안에서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솔뫼는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의 고향인 동시에 한국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로 여겨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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