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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611
한자 兪海濬
영어공식명칭 Yu Haeju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합덕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 유해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유해준 중국 광동 중산 대학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41년 - 유해준 한국 광복군 훈련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유해준 일본군에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유해준 징역 2년, 집행 유예 3년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유해준 국군 창설에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50년 - 유해준 한국 전쟁 참전
활동 시기/일시 1967년 - 유해준 육군 소장으로 예편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유해준 건국 훈장 독립장 수여
몰년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유해준 사망
출생지 유해준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합덕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유해준 거주지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합덕리
묘소 유해준 묘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사당2동 산41-2] 국립 서울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91
성격 독립운동가|군인
성별
대표 경력 육군 대학 총장

[정의]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군인.

[개설]

유해준(兪海濬)[1917~1986]은 일제 강점기 중국으로 망명하여 홍진의 한국 독립당에 입당하였고, 1940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한국 광복군 창설에 참여하여 항일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 뒤 일본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귀국하여 국군 창설에 가담하였고 1967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가계]

유해준의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아버지는 유진찬(兪鎭瓚)이다.

[활동 사항]

유해준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합덕리에서 태어나 합덕 공립 보통학교[현 합덕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산 농업 학교를 수료하였다. 이후 중국 난징[南京]으로 망명해 조선 민족 혁명당에 입당하여 활약하였다.

유해준은 1937년 중국 광저우에 있던 중산 대학(中山大學)에 입학하였으나, 중일 전쟁이 발발하여 한국인 학생 40여 명과 함께 항일 전쟁에 참여하였다. 그 후 난징·항저우가 일본군에 함락되자, 호북성 장사(長沙)에 집결하여 김구·지청천·조소앙 등이 주축인 한국 독립당에 들어갔다. 유해준은 중국 중앙 육군 군관학교[황포 군관 학교]에 입학하여, 장사·한커우·충칭 등을 거쳐 사천성 청두[成都]로 이동하여 훈련에 전념하였다. 그 뒤 중앙 육군 군관 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산하의 한국 광복군 총사령관 전속 부관에 임명되어 광복군 창설에 이바지하였다. 중국 전방 장사 위로(前方將士慰勞) 부녀회 송미령(宋美齡) 회장을 방문하고 한국 광복군 창설 찬조금 10만 원을 얻어 오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당시 한국 광복군 사령부의 젊은 대원 50여 명은 산시성 시안[西安]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활동하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사 특파단의 조성환·황학수 등 10여 명과 합류하였다. 1941년에는 한국 광복군 전방 사령부로 개편되고 청년 대원들은 중국군 간부 훈련부에서 훈련을 수료했다. 1942년 전방 사령부로 복귀한 유해준은 한국 광복군 제3 지대 요원으로 전방에 파견되어 척후 공작을 준비하던 중국군과 합류하였고, 중국군들과 함께 일본군 점령지에 잠입하여 활동하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유해준은 그곳에서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일본 규슈[九州]로 압송되어, 고쿠라[小倉] 재판소에서 징역 2년, 집행 유예 3년의 선고를 받았다.

해방을 맞이한 유해준은 귀국하자마자 1945년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고, 한국 전쟁 당시에는 육군 제25 연대장으로 참전하였다. 그 후 남부 지구 경비 사령관, 제25 사단장, 육군 대학 총장 등을 역임한 후 1967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묘소]

유해준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사당 2동 산41-2] 국립 서울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91이다.

[상훈과 추모]

유해준은 충무·화랑 무공 훈장을 받았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 광복군에서 활동한 유해준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 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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