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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정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648
한자 咸平鄭氏
영어공식명칭 Hampyeong Jeongsi|Hampyeong Jeong Clan
이칭/별칭 숯골 정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함평(咸平) - 전라남도 함평군
입향지 함평정씨 당진 입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함평정씨 당진 집성지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묘소|세장지 함평정씨 당진 세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성씨 시조 정언겸(鄭彦謙)
입향 시조 정암(鄭巖)

[정의]

정언겸이 시조이고 정암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함평정씨(咸平鄭氏)는 16세기 중엽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에 입향하였다. 현재 수당리 주민 100여 가구 중 60여 호가 함평정씨일 정도로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입향 연륜이 깊어 일명 ‘숯골 정씨’라고 불린다. 당진 지역 함평정씨의 대표적인 인물은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대학자였던 정재학(鄭在學)[1888~1949]과 1919년 수당리 봉화 시위를 이끌었던 정원환(鄭元煥)[1864~1939]을 꼽을 수 있다.

[연원]

함평정씨의 본원은 신라 사로 6촌의 부족장인 지백호(智佰虎)이다. 이자겸의 난이 발생하던 1126년(인종 4) 지백호의 38세손 정언겸(鄭彦謙)이 전남 함평으로 이주해 은둔하였다. 그 후 후손들이 이곳을 본관으로 삼아 함평정씨 문중을 이루고 있다.

함평정씨 문중은 크게 4파로 나뉘었다. 시조 정언겸의 11세손인 정계륜(鄭繼倫)의 후손을 진사공파(進士公派)라 하고, 역시 정언겸의 11세손 정숙륜(鄭叔倫)의 후손을 승지공파(承旨公派), 정숙륜의 둘째 아들인 정효창(鄭孝昌)의 후손을 면천공파(沔川公派), 정숙륜의 셋째 아들인 정무창(鄭武昌)의 후손을 주부공파(主簿公派)라 한다. 이 중에서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로 낙향한 파는 면천공파이다.

수당리에 거주하는 함평정씨를 면천공파라고 하는 것은 정효창이 면천 군수로 부임해 왔기 때문이지만 정효창은 이곳에서 거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수당리의 정씨 문중에서 정효창의 5세손인 정암(鄭巖)을 수당리 함평정씨의 파조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함평정씨 족보에 의하면, 정암과 아들 3형제부터 본격적으로 수당리에 거주하였다. 한편, 정암의 첫째 아들 정흥종(鄭興宗)의 후손들을 ‘종손파’라고 부른다. 이들은 대부분 수당리의 ‘윗숫골’에 거주하고 있다. 둘째 아들인 정흥선(鄭興先)의 후손들은 ‘차종손파’라고 하는데 ‘아랫 숫골’, ‘원당골’ 등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을 중간 마을에 산다고 하여 ‘중간말파’라고도 부른다. 셋째 아들인 정흥후(鄭興後)의 자손들은 ‘막내파’라고 부른다. 이들은 ‘원당골’과 정미면 대운산리에 거주하고 있다.

[입향 경위]

함평정씨의 당진 입향 경위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시조 정언겸의 12세손인 정효창(鄭孝昌)이 조선 시대 면천 군수를 지낼 때 아마도 정미면 수당리를 눈여겨본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정효창의 5세손인 정암 대부터 본격적으로 수당리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현황]

현재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는 100여 가구 중 약 60%인 60여 가구가 함평정씨이다. 1970년대 중반에는 전체 150여 호 가운데 120여 호가 함평정씨였고 한다.

[관련 유적]

함평정씨와 관련한 특별한 유적은 없으나, 문중에서는 한학자 정재학의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문중에서는 제사 경비를 조달하기 위하여 500평[약 1,653㎡] 정도의 토지를 매입하였고, 토지 임대료로 제사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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