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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661
한자 全州李氏
영어공식명칭 Jeonju Yisi|Jeonju Yi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83년 - 전주이씨 당진 입향조 이유연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659년 - 전주이씨 당진 입향조 이유연 사망
본관 전주 - 전라북도 전주시
입향지 전주이씨 당진 입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봉교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전주이씨 당진 세거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봉교리
묘소|세장지 전주이씨 당진 세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봉교리
성씨 시조 이한(李翰)
입향 시조 이유연(李有然)

[정의]

이한이 시조이고 이유연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전주이씨(全州李氏)는 가장 번성한 성씨 중의 하나로, 당진 지역 많은 곳에서 세거지를 형성하면서 거주하고 있다. 당진시 송악읍 봉교리에 집성촌을 형성한 전주이씨는 덕천군파(德泉君派)다. 입향조 이유연(李有然)[1583~1659]의 후손들이 봉교리의 봉하제(鳳下齊)에 세거지를 형성하며 거주하였다. 이들은 봉제실(奉祭室)이라는 사당을 세우고 문중의 전통과 역사를 기리고 있다.

[연원]

전주이씨의 시조는 신라 경덕왕 때 태어나 46대 문성왕 때 사공(司空)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이한의 묘소는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건지산(乾止山)에 있는 조경단(肇慶壇)으로, 매년 4월 10일에 제사하고 있다.

전주에서 세거지를 이루며 본관으로 삼게 된 이한의 후손들은 18세손인 이안사(李安社)에 이르러 큰 변동에 직면하게 되었다. 전주의 호족이었던 이안사는 당시 전주 지주(知州)와 문제가 생겨 강원도 삼척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 지주가 다시 삼척으로 부임해 오자 일족을 거느리고 동북면의 의주(宜州)로 옮겼고 결국 원에 귀순하여 두만강 변의 알동(斡東)으로 이사하였다.

이안사의 아들 이행리(李行里)이행리의 아들인 이춘(李椿)은 두만강 부근의 천호(千戶)로 있었으며, 이춘의 아들인 이자춘(李子春)도 원의 쌍성총관부가 있던 영흥에서 천호 벼슬을 지냈다.

고려 말 공민왕은 원나라의 국력이 쇠퇴하자 북진 정책을 전개하여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회복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이자춘이 고려와 내응하여 총관부를 함락시키는 데 공을 세우고 ‘대중대부 사복경(大中大夫司僕卿)’이 되었다. 이자춘의 아들인 22세 이성계도 아버지와 함께 큰 공을 세웠다.

이성계는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자 개경을 탈환하고 정치적으로는 신흥 무인 세력의 중심 인물로 성장하였다. 또한 명나라와의 철령위(鐵嶺衛) 문제로 요동 정벌을 진행하다가 위화도 회군으로 집권하게 되었으며 1392년 정도전, 조준 등의 혁명파 사대부의 추대로 조선 왕조를 건국하였다. 이로써 전주이씨는 왕성(王姓)으로서 크게 번성하며 방대한 씨족적 기반 위에서 조선 시대 정치 세력의 중추를 이루었다.

전주이씨는 현재 105여 파로 분리되었다. 이 중 명문으로는 6명의 정승을 배출한 밀성군파(密城君派)[세종의 아들]와 영의정 1명과 3명의 대제학을 낸 덕천군파를 꼽는다. 가장 번창한 계파로는 효령대군파, 광평대군파, 덕천군파, 밀성군파, 양령대군파의 순서로 보고 있다.

[입향 경위]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봉교리에 세거지를 이루고 있는 전주이씨는 덕천군파다. 덕천군은 시조 이한의 24세손으로 조선 2대 왕 정종의 아들인 이후생(李厚生)이다. 전주이씨 덕천군파가 당진시 송악읍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이후생의 6세손이며 학성군(鶴城君)의 증손자인 이원(李瑗)[1543~1628]에 이르러서이다. 이원은 1583년(선조 16)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 부제조, 경기 감사, 형조 참판, 한성부 좌윤 등을 역임한 인물인데, 광해군 때에 폐모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면천군에 군수로 좌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원은 곧 서울로 올라갔고, 후에 이원의 네 아들 중 막내인 이유연(李有然)[1583~1659]이 다시 낙향하여 송악면 봉교리, 즉 봉하제(鳳下齊)에 거주하게 되었다.

[현황]

전주이씨 당진 입향조 이유연의 묘소는 현재 당진시 송악읍 봉교리 3반 산22번지에 있고 아버지 이원의 묘도 같은 장소에 조성되어 있다. 또한 사우로서 봉제실(奉祭室)이 봉교리 20번지에 세워져 있다.

전주이씨 덕천군파는 한때는 46호까지 거주하였는데 현재는 봉교리 3반, 4반, 5반, 6반 등을 중심으로 28호가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타지로 이동한 가족까지 본다면 200여 호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유적]

이유연을 제향하는 사당이 봉제실(奉祭室)이다. 당진시 송악읍 봉교리 20번지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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