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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간척사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819
한자 -干拓事業
영어공식명칭 Reclamation Project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대호지면|석문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자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70년 - 삽교천 방조제 기본 조사 실시
발생|시작 시기/일시 1976년 12월 24일 - 삽교천 방조제 착공
발생|시작 시기/일시 1981년 4월 21일 - 대호 방조제 착공
종결 시기/일시 1981년 10월 25일 - 삽교천 방조제 준공
종결 시기/일시 1984년 11월 16일 - 대호방조제 준공
발생|시작 시기/일시 1987년 8월 - 석문 방조제 착공
종결 시기/일시 1995년 12월 - 석문 방조제 준공
발생|시작 장소 삽교천 방조제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지도보기
발생|시작 장소 대호 방조제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지도보기
발생|시작 장소 석문 방조제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하천 하구나 리아스식 해안의 일부에 제방을 쌓아 농경지와 농업용수를 확보한 사업.

[개설]

간척 사업은 수리 안전답 및 경지 면적의 획기적 확대를 위해 하천 하구나 리아스식(rias式) 해안의 일부에 제방을 쌓아 이용 가능한 토지를 넓히는 사업이다. 우리 나라의 서해안과 남해안은 간척 사업에 유리한 지형이기 때문에 식량 증산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1970년대에 간척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역사적 배경]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벽골제(碧骨堤)나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황등제(黃登堤) 등에서 삼국 시대 간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몽고의 침입으로 말미암은 강화도 피란 시절에 군량미를 조달하려는 목적으로 강화의 제포, 와포 등에서 간척한 사례가 기록으로 전한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국력의 강화와 재정 확보를 위하여 간척을 추진하였는데, 특히 인조에서 정조에 이르는 160여 년간은 간척 사업의 부흥기였다. 또한 다산 정약용은 저서 『목민심서』에서 간척의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의 간척은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작은 갯고랑이나 해변을 막는 정도이고, 방조제의 길이도 수백 미터를 넘지 않았다. 본격적인 간척은 일제 강점기 이후에 진행되었는데, 주로 일본 정부의 비호를 받으며 국가와 일본인 자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지역은 반도형 지형으로 조선 시대부터 바다를 막아 농지로 활용하는 간척 사업이 지속된 지역인데, 1960년대 이후 본격적인 현대적 간척 사업이 이루어졌다.

[경과]

충청남도 당진시의 간척 사업은 신평면삽교천 방조제, 대호지면 대호 방조제, 석문면 석문 방조제를 완공하면서 상당한 농경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1976년 착공한 삽교천 농업 종합 개발 사업을 1981년 완공하였고, 1981년 착공한 대호 지구 농업 종합 개발 사업은 1984년 완공하였다. 또한 1987년 착공한 석문 지구 간척지 개발 사업은 1991년 석문 방조제를 완공하고 1995년 외곽 지역까지 완공하면서 전국 최고의 쌀 생산지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결과]

충청남도 당진시는 간척 사업을 통해 상당한 농업 용지와 공업 용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삽교천 농업 종합 개발 사업을 통해 간척답 1,037㏊, 대호 지구 농업 종합 개발 사업에서는 간척 개답 2,899㏊와 개간지 198㏊를 확보하였다. 또한 석문 지구 간척지 개발 사업으로 농지 1594.25㏊와 담수호 873.96㏊를 확보하는 성과를 얻었으며, 이 중 일부는 현재 석문 국가 산업 단지로 개발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충청남도 당진시의 경지 면적은 196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1965년 당진시 총 경지 면적이 2만 3120㏊였으나 2012년에는 2만 8599㏊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하지만 이 중 논의 면적이 2005년 2만 2427㏊를 정점으로 이후 2012년 2만 1564㏊까지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농촌 지역의 고령화로 인한 농업 인구의 감소와 서해안 개발로 인한 농지의 전용이 가속화되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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