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삼민고등공민학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041
한자 三民高等公民學校
영어공식명칭 Sammin Higher Civic School
이칭/별칭 삼민 학교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옥금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오숙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교 시기/일시 1958년 4월 2일연표보기 - 삼민고등공민학교 개교
이전 시기/일시 1965년 - 삼민고등공민학교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 옥금리에서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 합덕리로 이전
개칭 시기/일시 1965년 - 삼민고등공민학교에서 서야 중학교로 개칭
최초 설립지 삼민고등공민학교 -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 옥금리 지도보기
성격 중등 교육 기관
설립자 유재하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옥금리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개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에게 중학교 과정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였다. 1948년 고등 공민학교 규정에 따라서 수업연한 1~3년으로 제도가 설치되었으나, 중학교 교육의 보편화로 점차 사라져갔다.

[교육 목표(교훈 포함)]

교훈은 박애. 협동, 근로이다.

[변천]

삼민고등공민학교서야 중·고등학교 이사장이었던 유재하가 설립하여 1958년도 4월 2일에 개교하였다. 유재하는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해서 성균관 대학교 3학년 재학중 휴학을 하고 종형제들에게 교육 사업을 제안하였다. 3월부터 서류를 작성하고 준비해서 3학급으로 허가를 받았다. 실제 1학급 학생 수는 35~36명으로 시작했지만, 농촌 일이 바빠지면서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들어 1회 졸업생은 14명이었다. 설립 목적은 덴마크의 개척자 쿠룬트비의 농촌 개척 정신을 본받아 그의 이상을 목표로 하였다.

설립 장소는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 옥금리 유재하의 논 4,2971㎡,[300평]에 삽으로 벼포기만 다듬고 똘을 치고 천막 교실 2개를 치고 시작하였다. 여름 장마가 한창이었을 때는 교실 구실을 하는 천막이 홍수에 휩쓸려가기도 했다. 삼민고등공민학교 교사는 유재하, 유재오, 김춘자였다. 그 후 주건환, 홍성규가 교사로 채용되었으며, 유재하가 부지와 운영 자금을 전부 조달하였다. 교사는 서야 중학교가 설립되어 1965년에 중학교가 인가 나면서 증설되었다. 1965년 현 서야 중·고등학교 자리로 학교 부지를 이전하였으며, 권영석, 박상흔, 강진태, 이미경이 1960년 부임했다.

[교가와 상징물]

1. 교가[류제하 작사, 김길제 작곡]

새 아침에 동이튼다 소들강문에 쌍봉산을 바라보고/ 솟아난 이집 부지런히 일하는 힘을 길러서/ 이고장의 부흥을 이룩해가자/ 논두렁 이슬길 옷을적시며/ 오늘도 배우러 모여든 우리/ 빛내자 서야를 이고장 넓게// 새 아침이 밝아온다/ 소들강문에 삽교천을 옆에끼고/ 솟아난 이집 서로서로 도옵는 정신을 길러/ 이나라의 역사를 이룩해가자/ 비나린 도랑길 미끄러지며/ 오늘도 배우러 모여든 우리 빛내자 서야를 한반도 넓게// 새 아침에 종이운다/ 소들강문데 서해안의 한 편에/ 솟아난 이집 서로서로 사랑의 마음을 길러/ 이세상의 평화를 이룩해가자/ 눈나린 들판길 넘어지면서/ 오늘도 배우러 모여은 우리 빛내자 서야를 세계에 넓게//

[현황]

삼민고등공민학교 졸업생은 해마다 30~40명 사이로 5회 200여 명정도 배출되었는데, 검정고시를 보아 중학교 졸업 자격증을 받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도 있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