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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애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388
한자 楓崖集
영어공식명칭 Pungaejib
이칭/별칭 풍애 선생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성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726년연표보기 - 『풍애집』 1권 편찬
편찬 시기/일시 1738년연표보기 - 『풍애집』 2권 편찬
간행 시기/일시 1812년 - 『풍애집』 목활자본 2권 1책 긴행
간행 시기/일시 1897년 - 『풍애집』 정리자본 2권 1책 간행
소장처 한터 우리 문화 연구소 - 충청남도 당진시 당진2로 7-17
성격 개인 문집
저자 안민학
편자 안국광|안세광
간행자 초간 안최중(安最重)|중간 안종화(安鍾和)
권책 2권 1책
행자 유계(有界) 20자 10행
규격 26.5×19㎝
어미 상하향 흑어미
권수제 풍애선생집
판심제 풍애집

[정의]

충청남도 당진 출신인 조선 후기 문신 안민학의 개인 문집.

[개설]

『풍애집(楓崖集)』풍애(楓崖) 안민학(安敏學)의 개인 문집으로 1권에는 시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절구(絶句), 율시(律詩)에 다 능해서 오언 율시(五言律詩), 칠언 절구(七言絶句)를 많이 썼고, 고시(古詩)도 상당 편수가 수록되어 있다. 2권에는 기(記), 서(書), 제문(祭文), 잡저(雜著) 위주로 편제했다. 『풍애집』은 두 번 간행되었는데, 초간은 1812년 목활자본이고, 중간은 1897년 정리자 본으로, 숭학사(崇學社)에서 간행되었다.

[저자]

안민학(安敏學)[1542~1601]은 조선 후기의 학자,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이다. 자는 습지(習之), 호는 풍애(楓崖)이다. 애도문(哀棹文)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경(經), 사(史), 백가(百家)를 광범위하게 섭렵했으며, 25세에 박순(朴淳)에게 나아가 사제 관계를 맺은 뒤, 이이(李珥), 정철(鄭澈), 이지함, 성혼(成渾), 고경명(高敬命) 등과 교유했다.

1583년 사헌부 감찰이 된 뒤 외직으로 나가, 대흥·아산·현풍·태인 현감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소모사(召募使)로 임명되어 전라도 광주를 중심으로 군량 수천 석, 전마(戰馬) 수백 필, 군사 수천 명을 모아 북상하여 아산에 도착했으나, 병을 얻어 나아가지 못하자, 조정에서는 그 병력과 군량을 체찰사(體察使) 유성룡(柳成龍)에게 돌리게 하였다.

이 공로로 후에 사도시 첨정을 제수 받았으나 사양하고, 신평현[현재의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낙향하여 지내다 생을 마쳤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묘소와 신도비가 송악읍 고대리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2권 1책인데, 1권은 안국광(安國光)이 1726년 선성(宣城) 이간(李柬)의 서문(序文)을 받아 편찬했고, 2권은 1738년 안세광(安世光)윤봉조(尹鳳朝)의 서문을 받아 편찬하였다. 편찬되어 있던 것을 발간한 것은, 1812년 목 활자본 2권 1책으로 안효철(安孝喆)이 처음 간행하였고, 그 후 1897년 안종화(安鍾和)가 정리자본 2권 1책으로 숭학사(崇學社)에서 중간(重刊)하였다.

[형태/서지]

단선사주(單線四周), 유계(有界)에 20자 10행이며, 반곽(半廓) 기준 184쪽, 26.5×19㎝의 크기이다.

[구성/내용]

2권 1책으로 1권에 오언 고시 8수, 오언 절구 9수, 오언 율시 18수, 칠언 절구 41수, 칠언 고시 16수, 2권에 기(記) 1, 서(書) 2, 제문(祭文) 5, 잡저(雜著) 4로 구성하여 1권에는 시 92수, 2권에는 기(記), 서(書), 제문(祭文), 잡저(雜著)로 구분하였다.

[의의와 평가]

국난으로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살면서, 임진왜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헌신하다가 병을 얻어, 그로 인해 생을 마감한 충성스런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문헌자료라고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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