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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034
영어공식명칭 Rock
이칭/별칭 바회,바외,바우,바구,방구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추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4년 4월 10일 - 당진안국사지매향암각 충청남도 기념물 제163호로 지정
소재지 의두암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 사동 상왕산 연화봉지도보기
소재지 영웅 바위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 평택항 서두부 방파제지도보기
소재지 김복선 바위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금천리 망객산지도보기
소재지 배 바위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원당골 1길 188[수당리 687-1]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암석 가운데 부피가 크고 넓적한 돌.

[개설]

암석은 광물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자연적 고체인데, 이 암석 가운데 부피가 매우 크고 넓적한 돌을 바위라 한다. 바위 가운데 그 형상이 어떤 동물을 닮았거나 부락을 수호하거나, 입석 형태로 부락의 상징석이 되거나 하면, 사람들은 이 바위를 귀중하게 여기게 된다. 이런 바위들은 애기를 잘 낳게 비는 기자석이나 선돌과 같이 부락의 상징돌로, 고인돌같이 고대 무덤으로 쓰거나, 설악산의 흔들바위처럼 관광 상품이 되거나, 마을 입구에 거북돌처럼 서 있어 길지의 표상이 되어 예부터 선조들 삶의 일부분을 차지한 덕부넹 전설이 깃든 바위들이 많이 있다.

『석보상절』에 따르면 바위의 어원은 바회인데, 나중에는 바외, 바우, 바구, 방구 등으로 변음되었다. 당진시 대호지면에 가면 ‘방구 바위’가 있다. 여기서 사실 ‘방구’도 바위를 뜻하는 것이다.

[암석의 종류와 특징]

암석은 크게 퇴적암, 변성암, 화성암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는 암석의 순환 과정을 통해 서로 변한다. 우리가 생활하는 지표는 퇴적암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퇴적암층 아래의 화성암과 변성암에 비교하면 피자 위에 올려진 얇은 치즈의 두께 정도로 얇다. 퇴적암은 물과 바람 등의 운반 작용에 의해 운반된 광물이 지표의 낮은 압력과 낮은 온도의 상태에서 퇴적 작용을 거쳐 만들어진다. 화성암, 변성암과는 구조와 조직이 다르고, 가장 큰 특징으로 화석을 포함한다.

화성암은 지표보다 상당히 높은 온도에서 녹은 마그마가 식으면서 결정작용을 거쳐 만들어진다. 마그마의 성분과 결정작용이 이루어지는 상황에 따라 다른 특징을 가진다. 변성암은 퇴적암과 화성암이 높은 압력과 온도로 인해 원래의 광물 성분이나 조직이 변하여 만들어진다. 원래의 암석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변성 광물이나 변성 조직을 갖는다. 때로 마그마의 결정 작용으로 이루어진 물질로 퇴적암의 형태를 갖는 암석도 있다.

[당진의 바위]

당진 지역에도, 아산만 한가운데 솟아있는 임진왜란과 관계 있는 영웅 바위, 운양 김윤식이 유배와서 매일 올랐다는 면천 연화봉의 의두암, 신평면 망객산에 있는 조선 시대 기인 김복선 바위, 합덕 봉호재의 삼형제 바위, 우강 송산리 당살미의 거북 바위, 면천 검암산의 구마 바위, 아미산신선 바위 등 전설이 깃든 유서 깊은 바위들이 많이 있다.

의두암면천면 성하리 사동 영탑사가 있는 상왕산 말미의 연화봉에 있는 바위이다. 영탑사 경내에서 탑산을 오르면 칠층 석탑이 나온다. 칠층 석탑 뒤로 300m쯤 올라가면 연화봉이 나온다. 연화봉 꼭대기에 약 4m쯤 되는 바위가 솟아 있고, 이 바위 중간에 몇 사람이 앉을 정도의 평평한 대(臺) 모양의 빈 자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마치 병풍을 두른 모양을 하고 있다. 바위 전체로 보면 커다란 의자 형상이다. 병풍 모양을 한 바위의 정면 일부를 약간 다듬고, 여기에 예서체로 ‘依斗岩(의두암)’이라 새겨 놓았다. 좌측 아래쪽에는 ‘人道正一(인도정일)’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다. 이 바위를 ‘의두암’이라 이름 짓고 글씨를 새긴 이는 1887년(고종 24)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이다. 운양 김윤식이 직접 쓴 ‘每依北斗望京華(매의북두망경화)’라는 글자를 약해서 바위에 조각한 것이라 한다. 그 뜻은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북쪽 서울을 바라보고 임금님의 만수무강과 나라가 융성하기를 기원한다.’라는 뜻이다.

영웅암은 송악읍 한진 나루에서 바라보면 평택 쪽으로 아산만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무인 바위 섬이다. 행정 구역상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에 속하는 무인도이다. 평택항 서두부 방파제 끝부분 옆으로 생긴 것이 범상치 않은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영웅(英雄) 바위이다. 아산만 해도를 보면 ‘영암(英岩)’으로 되어 있으나,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영웅 바위로 더 알려져 있다. 영웅 바위는 경기도에 더 가깝게 평택시 포승면 만호리 서쪽 약 3㎞ 지점 해상에 우뚝 솟아 있다. 밀물시는 바위의 윗부분만 약간 나타나지만, 썰물 때에는 바닷물이 얕아지면서 높이 15m, 밑 둘레 60m의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아산만으로 침입할 때, 이 영웅 바위는 신통력을 발휘하여 조선 수군을 지휘하는 장수의 모습으로 변형하고, 그 주변의 작은 바위는 군졸로 변모하여, 이를 본 왜적들이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도망갔다고 한다. 이러한 업적이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이 바위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바위의 이름을 ‘영웅 바위’라고 칭하고, 정3품의 관직을 내려주었다고 전한다.

신평면 금천리 망객산에 가면 김복선이 어릴적 놀던 김복선 바위가 있다. 조선 시대 기인으로 토정 이지함과 관련된 망객산의 지명 유래에도 등장하는데, 김복선망객산 밑에 숨어 살았다 한다. 그래서 망객산 동쪽 산록 중턱에는 김복선의 발자국이 새겨진 김복선 바위,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김복선 다랭이논 등 김복선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병자록(丙子錄)』에 보면, 김복선은 홍주목 신평현 사람으로 병서를 좋아 하였다. 가문이 미천하여 동리의 약정(約正)이 되었는데, 염평공직하였다. 임진왜란 시 동리 사람들이 모두 난리를 피하여 입산하였으나 김복선은 홀로 집을 수축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 동리 사람들이 돌아와서 김복선의 선견에 탄복하였다.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에 가면 보물 제100호인 당진 안국사지 석조 여래 삼존 입상(唐津安國寺址石造如來三尊立像)과 제101호인 당진 안국사지 석탑(唐津安國寺址石塔)이 서 있다. 그리고 당진 안국사지 석조 여래 삼존 입상 뒤에는 길게 배처럼 옆으로 누워 있는 큰 바위 하나가 있다. 이 바위는 고려 시대의 매향비로 모양이 배[舟] 같이 생겨서 ‘배 바위’, 고래 모양이라 하여 ‘고래 바위’ 또는 베틀의 북 모양이라 하여 ‘북 바위’ 등으로 불린다. 배 바위에는 ‘경오 이월일 여미 북천구 포동제 매향 일구 화주연선 결원 향도(庚午二月日余美北天口浦東際埋香一丘 化主兗先結願香徒)’라는 명문이 세로로 새겨져 있다. ‘여미(麗美)’라는 지명은 1018년(현종 9)부터 1407년(태종 7) 전까지 사용되다가, 해미(海美)로 바뀌었다. 따라서 매향비는 고려 말~조선 초에 글자가 새겨졌다고 볼 수 있다. 암각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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