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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068
한자 勝戰谷
영어공식명칭 Seungjeongok Valley
이칭/별칭 승전우(僧田隅),승전목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추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승전곡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 지도보기
성격 계곡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 검암천 양쪽에 깎아지른 듯한 암벽산에 있는 협곡.

[명칭 유래]

구한말 면천 관아에서 여미평에 모인 동학군 토벌을 위해서 진격해 오던 관군과 검암천 협곡에서 교전해 동학군이 대승하여 ‘승전목(勝戰項)’이란 지명을 붙였다고 알려졌다. 『피난록(避難錄)』에는 승전우(僧田隅)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1929년에 발행된 『신인간』의 「70년 사상의 최대 활극 동학 난 실화」에서는 승산(僧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당진군 교육회에서 1936년에 발행한 『당진군사(唐津郡史)』에 의하면, ‘임진년(壬辰年)의 역(役)’이라고 하여 “임진왜란 당시 큰 승리를 하여 승전곡(勝戰谷)이라 하였다.”라고 한다. 주한 일본 공사관 기록에도 ‘승전곡(勝戰谷)’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연환경]

당진시 구룡동에서 면천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2㎞ 정도 가면 면천면 사기소리가 나온다. 면천면 사기소리와 구룡리 경계로 흐르는 검암천 절벽은 지명에서 유래하듯 칼바위로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 암벽산에 협곡을 이루는 곳을 승전목이라 한다.

[승전곡 전투]

천도교 소속 개벽사(開闢社)에서 발행된 『개벽(開闢)』에 수록된 「갑오 동학과 충남」이란 글에 승전곡 전투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당시 충청남도의 동학은 덕포(德胞), 예포(禮胞), 청포(淸胞), 충경포(忠慶胞), 산천포(山川胞), 홍포(洪胞) 등이 있었는데, 덕포(德胞)는 춘암(春菴) 박인호(朴寅浩)를 중심으로 덕산(德山), 예산(禮山), 온양(溫陽), 홍주(洪州), 결성(結城), 면천(沔川), 당진(唐津), 서산(瑞山), 태안(泰安), 목천(木川) 등의 교단을 통합한 강한 세력이었다 한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10월21일 합덕의 동학 농민군이 홍주 관군에게 진압당했고 22일에는 면천의 동학 농민 지도자였던 이창구가 홍주목에서 처형당하고 나서 면천 지역의 동학 세력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 후 태안과 서산 지역의 동학 농민군은 해미를 거쳐 해미의 여미벌에 집결하게 되었고, 예포와 덕포의 연합 부대로 성장하게 되었다. 즉, 모든 교단은 일제히 봉기하여 해미군(海美郡) 여미평(餘美坪)[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운집하니 불과 2~3일 사이에 1~2만 명의 동학군이 모이게 되었고, 동학군은 면천군(沔川郡) 관아를 향해서 일제히 진격하였다. 동학군은 10월 24일[양력 11월 21일]에 15,000여 명에 이르는 인원을 이끌고 면천의 승전곡에서 일본의 아카마츠[赤松國封] 소위가 이끄는 일본군 1개 소대, 2개 분대, 관군 34명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동학군이 대승하고 일본군은 홍주로 퇴각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 협곡을 ‘승전목(勝戰項)’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현황]

옛날 면천 8경 중 하나인 ‘승전어화(勝戰漁火)’라 해서 승전목에서 밤에 횃불을 들고 깨끗한 냇가에서 은어를 잡는 경관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현재도 가을날 단풍이 들고 맑은 물이 흐르면 경치가 일품이어서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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