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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56
한자 慶州金氏烈行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Stone for Lady Gyeongju Gim Cla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 산75-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경주김씨 열행비 -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 산75-2 지도보기
원소재지 경주김씨 열행비 -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 산75-2
성격 열행비|열녀비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에 있는 윤병표의 아내 경주김씨의 열행비.

[개설]

경주김씨(慶州金氏)[1880~1907]는 칠원 윤씨(漆原尹氏)[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윤병표(尹炳杓)[1879~1907]의 아내다. 남편이 1907년 2월 29일, 28세의 젊은 나이에 질병으로 사망하자 예법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경주김씨는 남편이 사망한 지 불과 13일 만인 3월 13일, 남편의 뒤를 이어 자결하였다. 유림에서는 경주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열녀 정려를 세웠다.

[위치]

경주김씨 열행비(慶州金氏烈行碑)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 산75-2에 있다.

[변천]

원래 경주김씨의 묘역에는 열녀 정려와 함께 열행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려는 허물어지고, 정려 안에 있던 열행비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3년경 같은 마을 내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였다.

[형태]

경주김씨 열행비의 전면에는 ‘유인 경주김씨 열행비(孺人慶州金氏烈行碑)’라 새겼고, 좌측면부터 ‘열부 경주김씨 기적비문(烈婦慶州金氏紀蹟碑文)’이라 하여 열행의 내용을 한문으로 기록하였다. 비문을 찬(撰)한 사람은 김완진(金完鎭)이고, 군수 강대철(姜大喆)이 새기고 문묘 직원 구홍서(具鴻書)가 글씨를 썼다. 비문은 이끼가 끼고 마모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번역해야 상세한 사실을 알 수 있겠다. 열행비를 세운 연대도 확인할 수 없으나, 강대철이 당진 군수로 재임한 기간이 1927~1929년이므로, 이때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김씨 열행비는 가로 87㎝, 세로57㎝, 높이 12㎝의 화강석 받침돌 위에 가로 55㎝, 세로 26㎝, 높이 130㎝의 오석 비신을 세웠고, 그 위에 가로 90㎝, 세로 60㎝, 높이 50㎝의 지붕돌을 얹었다. 전체 높이는 195㎝이다. 열행비 주변에는 없어진 정려의 주춧돌이 사방에 널려 있다. 주춧돌은 팔각형으로 된 화강석인데 폭 25㎝, 높이 55㎝에 달한다.

[현황]

칠원 윤씨들은 열행비가 있는 순성면 갈산리 산곡길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다고 한다. 열행비의 100m 정도 건너편에는 윤곤강(尹朋遠)[1911~1950]의 묘소도 있다. 현재 칠원 윤씨들은 모두 타지로 떠났고, 갈산리에는 선산과 묘소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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