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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80
한자 具藝神道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Stone for Gu Y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6년연표보기 - 구예 신도비 건립
현 소재지 구예 신도비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면 가교리 산63 지도보기
원소재지 구예 신도비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면 가교리 산63
성격 신도비
크기(높이, 너비, 두께) 전체 높이 274㎝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구예의 신도비.

[개설]

구예(具藝)[?~?]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다.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1317년(충숙왕 17) 구재삭시(九齋朔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중대광 판전의시사(重大匡判典儀寺事)에 이르렀으며, 면주(沔州)[현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를 하사받고 면성 부원군(沔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에 형성된 능성 구씨 집성촌의 입향조다.

전설에 따르면, 구예가 원나라에 가는 길에 어느 부부의 목숨을 구했는데 이들 부부가 나중에 구예의 묘소를 현재의 장소에 정해 주었다고 전한다. 그 후 구예가 사망하자 부인인 아주 신씨(鵝洲申氏)가 구예의 묘소를 미리 정해 둔 송악읍 가교리 신암산에 조성하였다. 그리고 묘소 옆에 신암사(申庵寺)를 짓고 인도에서 금동 불상을 들여와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현재 신암사에는 구예와 아주 신씨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금동 불상은 1989년 보물 제987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구예 신도비는 후손들이 1926년 초여름에 세웠다.

[위치]

구예 신도비충청남도 당진시 송악면 가교 1리 산63 절골에 있다.

[형태]

신도비의 받침돌은 화강석으로 만들었으며 가로 103㎝, 세로 79㎝, 높이 32㎝이고, 비신은 가로 61㎝, 세로 30㎝, 높이 168㎝ 크기의 오석이다. 지붕돌은 화강석인데 가로 110㎝, 세로 79㎝, 높이 50㎝이다.

[금석문]

구예 신도비의 두전(頭篆)[비석 몸체의 머리 부분에 돌려 가며 쓴 전자(篆字)]은 ‘중대광 면성 부원군 구공 신도비명(重大匡沔城府院君具公神道碑銘)’이라고 적혀 있다. 비문은 구연창(具然敞)이 글을 짓고, 권중하(權重夏)가 글씨를 썼으며, 구한서(具翰書)와 구익서(具翊書)가 세웠다.

[현황]

신암사 우측에 능성 구씨 선산이 있으며, 이곳에 입향조 구예를 비롯한 여러 명의 능성 구씨 인물의 묘소가 조성되어 있다. 구예 신도비신암사와 선산의 중간 지점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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