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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81
한자 松嶽山城
영어공식명칭 Songak Mountain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중흥리 송악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학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4년 8월 12일연표보기 - 동학 농민 혁명 당시 농보성 축성
소재지 송악산성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중흥리 송악산지도보기
성격 산성
지정 면적 둘레 약 270m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중흥리 송악산 위에 있던 석성.

[개설]

송악산(松嶽山)송악읍 중흥리 송악 초등학교 뒷산으로, 송악읍 중흥리·석포리·정곡리·월곡리에 걸쳐 있다. ‘송악산’의 명칭은 ‘숭학사’에서 왔다고 한다. 송악산 중턱에 숭학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원래 송악산의 이름도 숭학사가 있던 산이라 하여 ‘숭학산’이었는데, 이것이 다시 ‘송악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송악산성송악산의 정상에서 50m쯤 못 미쳐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변천]

송악산은 해발 292m로 정상에서 보면 주변 해상까지 모두 볼 수 있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군사적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송악산에는 고대부터 관방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송악산성을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피난록』에 의하면 동학 농민 혁명 당시 급하게 주변 돌로 농보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환여승람』이나 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당진군사』(1936년) 산성 조에 따르면 김명배가 "1894년 8월 12일 송악산에 농보를 창립하여 토석을 운반해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송악산성은 조선 말에는 폐성이 되어 흔적을 찾기 힘들었던 것을 동학 농민 혁명 당시 급하게 축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송악산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중흥리 송악 초등학교 뒷산에 있다. 송악산성송악산의 정상에서 50m쯤 못 미쳐에 있다.

[역사적 관련성]

1894년 동학 농민 혁명 당시 면천 대접주 이창구가 송학산을 점령했다. 이창구송악산을 점령한 이후 주변 해상의 조운을 통제함으로써 조정으로 들어가는 모든 공세미를 차단하여 조정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이러한 이창구의 활약에 놀란 조선 조정은 외무대신 김윤식을 통해 일본군에게 군사를 구걸하여 송악산이창구를 토벌해 줄 것을 간청하기도 하였다.

[현황]

송악산성의 현재 모습은 원형을 찾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어 있지만 주변에 성벽으로 사용된 성돌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산 정상에는 통신 장비와 고압선, 철탑이 들어서 주변 경관을 해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송악산성은 비록 훼손된 폐성이지만 동학 농민 혁명 당시 내포 지방 농민군이 이곳을 점령하여 군사적으로 조선 조정을 위협했던 곳이다. 동학 농민 혁명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근대를 여는 대사건이었다. 송악산성은 내포 지방 동학 농민군의 기상이 깃든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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