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571
한자 具文老
영어공식명칭 Gu Munro
이칭/별칭 흑면 장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 산79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67년 - 구문로 좌익 원종공신 책봉
묘소|단소 충남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 산79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충남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 산79
성격 무신
성별
본관 능성(綾城)
대표 관직 좌익 원종공신(左翼原從功臣) 2등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개설]

구문로(具文老)[?~?]는 조선 시대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하고 평안도 조전 절제사(助戰節制使)가 되었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여진 토벌에 힘을 다해 ‘흑면 장군(黑面將軍)’이라 불렸다.

[가계]

구문로의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8세 구서(具緖)의 삼남이다.

[활동 사항]

구문로는 어려서부터 기개와 도량이 뛰어났고, 용맹과 지략을 갖추었다고 전한다.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1461년(세조 7)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와 평안도 조전 절제사에 겸직으로 임명되었다. 구문로는 1467년(세조 13)에 일어난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여 좌익 원종공신(左翼原從功臣) 2등에 봉해졌다.

구문로는 궁마(弓馬)에 능숙하여 요동 지역에서 여진족을 무찌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여진족은 구문로를 ‘흑면 장군’이라 부르며 두려워하였는데, 그것은 구문로의 얼굴에 손바닥만한 검은 사마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문로는 키가 2미터가 넘었고 체구가 건장하였으며, 특히 활쏘기를 잘하여 세조가 사냥을 나갈 때 사대장(射隊長)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현재 송악읍 가교리 신암사(申庵寺) 칠층 석탑 옆에 있는 ‘힘자랑 바위’는 구문로의 전설이 담겨 있는 곳이다. 구문로가 말을 훈련시키기 위해 신암산에 올라 말에게 “이 화살이 땅에 떨어지기 전해 화살을 받아라.” 하고는 활을 쏘고 난 뒤 말을 달렸다. 말은 비호같이 달려서 목적지에 도달하였지만, 화살이 보이지 않았다. 말이 늦었다고 판단한 구문로는 말을 칼로 내리쳐 죽였는데, 그제야 화살이 도달하자 구문로는 자책하며 바위를 눌러 주먹과 무릎 자국을 냈다고 전한다.

[묘소]

구문로의 묘소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 산79번지 신암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매년 음력 10월 초정일(初丁日)에 구문로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