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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579
한자 金弘郁
영어공식명칭 Gim Hongwuk
이칭/별칭 문숙(文叔),학주(鶴洲)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2년연표보기 - 김홍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5년 - 김홍욱 증광 문과 을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38년 - 김홍욱 당진 현감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46년 - 김홍욱 이조 좌랑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50년 - 김홍욱 홍충도 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54년 - 김홍욱 황해도 관찰사 전임
몰년 시기/일시 1654년연표보기 - 김홍욱 사망
출생지 김홍욱 출생지 - 서울특별시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경주(慶州)
대표 관직 황해도 관찰사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 선정비를 남긴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김홍욱(金弘郁)[1602~1654]은 인조·효종 때의 문신이다. 37세 때인 1638년 당진 현감에 부임하여 7개월의 짧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이 청덕 선정비(淸德善政碑)를 세우고 김홍욱의 치적을 기렸다.

[가계]

김홍욱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이다. 아버지는 찰방 김적(金積), 어머니는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 화순 최씨(和順崔氏)이다.

[활동 사항]

김홍욱은 1635년(인조 13)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護從)하였고 청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하였다. 김홍욱은 당진 현감으로 나가서는 충청도 관찰사와 뜻이 맞지 않아 사직하였고, 1646년(인조 24) 이조 좌랑이 되었으나 권신 김자점(金自點)과의 불화로 사직하였다. 김홍욱이 당진 현감으로 부임한 것은 37세인 1638년(인조 16)이었는데, 불과 7개월의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당진현 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김홍욱은 1648년(인조 26) 응교가 되어 관기(官紀)·공물(貢物)·방납(防納) 등 시폐(時弊) 15개조를 상소하였다. 1650년(효종 1) 집의와 승지를 거쳐 홍충도 관찰사(洪忠道觀察使)가 되어 충청도에 대동법을 실시하였다. 1654년(효종 5)에는 황해도 관찰사로 전임되었는데, 효종이 구언교(求言敎)[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왕이 신하들에게 해결책을 구하는 교지]를 내렸다. 김홍욱은 8년 전에 사사(賜死)된 희빈 강씨[소현 세자의 빈]의 억울함을 말하고 그 원한을 풀어줄 것을 상소하였다. ‘강옥(姜獄)’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효종의 종통(宗統)에 관한 것이었다. 크게 노한 효종김홍욱을 하옥하였고, 친국(親鞫)이 진행되던 중 김홍욱은 매를 못이겨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홍욱의 저서로는 후손들이 엮은 『학주집(鶴洲集)』이 전한다.

[묘소]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에 김홍욱의 묘소와 신도비가 서 있다. 신도비는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윤득화(尹得和)가 글자를 썼다.

[상훈과 추모]

1659년(효종 10) 송시열송준길(宋浚吉)의 건의로 김홍욱의 관작이 회복되었다. 1718년(숙종 44)에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고, 이듬해인 1719년(숙종 45) 문정(文貞)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721년(경종 1)에는 서산 성암 서원(聖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 남산 공원에는 김홍욱의 치적을 기리는 청덕 선정비(淸德善政碑)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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