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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607
한자 金道一
영어공식명칭 Gim Doil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6년연표보기 - 김도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4일 - 김도일 천의 장터 독립 만세 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19년 5월 21일 - 김도일 공주 지방 검찰청 송치
추모 시기/일시 1972년 - 3·1 운동 선열 추모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92년 - 창의사 추모각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4·4 독립 만세 운동 기념탑 건립
추모 시기/일시 2004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김도일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 327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도일 거주지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 327
묘소 김도일 묘소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도일(金道一)[1886~1919]은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정미면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가계]

김도일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김규모,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다.

[활동 사항]

김도일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 32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당진군[당시 서산군] 대호지면 조금리에서 출발하여 인근 마을인 정미면 천의리 천의 장터에서 봉기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만세 운동은 1919년 2월 말 남주원(南柱元)을 중심으로 도호 의숙(桃湖義塾) 출신 유생들이 고종의 인산(因山)[국장]에 참례하고 귀향함으로써 추진되었다. 유생들은 대호지면 면장인 이인정과 면사무소 직원들, 대호지면 송전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천도교 세력과 연대하여 치밀하게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만세 운동의 장소는 5일장이 열리던 당진군 정미면 천의리로 정하였고 봉기일은 장날인 4월 4일로 하였다. 주민 동원은 이인정 면장이 「도로 수선 병목 정리의 건[도로 보수와 가로수 정비]」이라는 문건을 발부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는 면내 집집마다 주민 1명씩이 출석하여 도로 보수를 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각 마을 구장들을 통하여 전달되었다.

대호지면 주민들은 4월 4일, 농기구를 지참하고 조금리에 있는 대호지면사무소에 집결하였다. 약 500여 명이 운집한 면사무소 광장에서 이인정 면장과 유생들은 독립 만세 운동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역설하고 주민을 설득하였다. 주민들은 이에 공감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고 7㎞를 이동하여 봉기 장소인 천의 장터로 향하였다.

1,000여 명의 대호지면정미면 주민들은 시장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고, 이를 제지하는 천의 주재소의 일본 순사와 한국인 순사를 무력으로 물리쳤으며 돌을 던져 천의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김도일은 만세 운동 직후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도일은 주모자급으로 취급되어 5월 21일 공주 지방 검찰청에 송치되어 옥고를 치렀고, 1919년 5월 24일 일제의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묘소]

김도일의 묘소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도일의 공훈을 기려 2004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대호지면 주민들은 1972년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3·1 운동 선열 추모비’를 건립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기렸고, 1992년 대호지면 조금리에 ‘창의사(彰義祠)’라는 추모각을 건립하여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대호지면 주민 573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995년에는 독립 만세 운동이 발발했던 정미면 천의리 천의 주재소 자리에 4·4 독립 만세 운동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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