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준광고등공민학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039
한자 俊光高等公民學校
영어공식명칭 Jungwang Higher Civic School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오숙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교 시기/일시 1956년연표보기 - 준광고등공민학교 설립
폐교 시기/일시 1959년연표보기 - 준광고등공민학교 폐교
최초 설립지 준광 고등공민학교 -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지도보기
성격 교육 기관
설립자 전해관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변천]

준광고등공민학교우강 초등학교 남쪽 약 5백 미터 지점의 마차길 옆에 있었던 학교로, 1956년 우강면 송산리에 사는 전해관에 의해 설립되었다.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개교 4년째 되는 1959년 여름에 폐교되었다.

신입생들의 연령은 13, 14세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가정 형편상 입학 적령기를 놓친 학생의 경우 20세에 가까운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개교 후 4회에 이르기까지의 입학생 수는 1회 60명, 2회 45명, 3회 65명, 4회 35명 등 200여 명이 넘었다. 중도에 편입 또는 제적된 수까지 합치면 거의 3백여 명에 이르렀다. 1,652㎡[500평] 남짓한 규모의 준광고등공민학교의 교실은 1회 졸업생들의 노력 봉사에 의하여 축조된 것이며, 반지하 흙벽돌 초가지붕 구조로 한 교실의 수용 가능 인원은 60여 명 정도의 비교적 어두운 투골과 비슷한 흙바닥이었다.

폐교의 직접적인 동기는 전해관 교장의 무리한 재원 차용 때문이었다. 부근의 타 고등 공민학교에 비하여 재학생 수도 월등히 많고 우강면 내에는 우강, 내경, 부장 등 3개 초등학교가 있으면서도 관내에 중등 학교가 없어 정규 중학교로 인가 조건이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한 전해관 교장이 구호물자가 수령되는 즉시 변제한다는 조건하에 무리하게 신축 공사를 착수했다가 해당 기관에 지원 가능성이 희박하게 되자 채권자들이 건축비를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이를 일시에 변제할 능력이 없던 교장은 도덕적 불신을 받고 사임하게 되었다.

[교육 활동]

준광고등공민학교 재직 교사는 교장을 포함하여 8명이었다. 방앗간 창고 수업 시간에 독립 선언문과 탄핵 재판에 관한 내용을 완전무결하게 암기하게 한 구건서[사회], 가난으로 반딧불을 등잔 대신 사용하여 성공했다는 중국 진나라 차륜의 이야기를 가르쳤던 박응산[한문], 교가를 작곡한 백남진[음악], 최병도[영어], 김태근[국어], 진성래[수학], 황형주[물리] 교사 등이 있었다.

[교가와 상징물]

1. 교가

울창한 송림속 아늑한 곳에 넓은 들 소들을 바라보면은/ 높고 넓은 희망을 가슴에 안고 우리들은 자라나는 새나라의 얼/ 준광학교 그 이름 무궁히 빛나리// 아산만 물결소리 동이 트이는 양양한 황해바다 바라보면은/ 온갖 시름 없어지고 새 힘 솟는다/ 우리들은 향토의 얼 새나라의 꽃 준광학교 그 이름 무궁히 빛나리//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