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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9경과 9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485
한자 唐津-9景-9味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오융진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전역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와 볼 만한 장소.

[개설]

충청남도 당진시는 내포 지역에 속해 있다. 내포 자연환경의 가장 큰 특색은 비산비야(非山非野)이다. 산다운 산이 없고 들만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뜻이다. 당진시는 삼면이 바다였으며 특히 리아스식 해안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삽교천 방조제대호 방조제, 석문 방조제가 축조되고 송산면송악읍 해변에 산업 공단이 조성되면서 천연의 해변은 모두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당진의 먹을거리 중에서 그만큼 수산물의 비중이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인 신평면송악읍 앞바다에 지천이었던 준치가 자취를 감춘 것이 좋은 예다. 이후 당진은 농산물과 축산물을 중심으로 먹을거리를 특화시켰다.

[왜 '당진 9경' '당진 9미'인가]

근래 들어 관광 산업이 지역 경제 활성화 대책의 묘안으로 새롭게 부상되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지방 자치 단체마다 지역의 관광 자원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진시도 마찬가지여서 우선 지역의 명소를 선정하되 전통적인 방법으로 지역의 8경과 8미를 선정하고 ‘당진 8경’과 ‘당진 8미’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당진 8경은 왜목 일출과 서해 대교, 난지도 해수욕장, 제방 질주[방조제], 솔뫼 성지, 함상 공원, 아미산[아미 망루],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 등이다. 당진 8미는 해나루 쌀풋꽈리고추, 해나루 한우, 면천 두견주, 가화 포도, 당진 사과, 실치회, 우렁 쌈밥으로 정했다.

이후 관광의 개념이 ‘스쳐 가는 관광’에서 ‘머무르는 관광’이란 개념으로 바뀌면서 ‘당진 8경’과 ‘당진 8미’에도 변화가 생겼다. 당진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 2012년 들어 당진시는 관광 명소와 특산물을 하나씩 추가하여 ‘9경’과 ‘9미’를 선정하게 된 것이다. 당진시는 “모든 지방 자치 단체에서 나름대로 8경을 선정하고 이에 맞춰 8미도 추가해 홍보하고 있으니 차별성이 없다. 당진시는 차별성을 두자. 흔히 이런 말들을 한다. ‘구미가 당긴다.’ ‘구경 가자.’ 따라서 기존의 8경과 8미에서 당진이 정말로 ‘구미’가 당겨 당진으로 ‘구경’ 가고 싶도록 한 가지씩 추가해 보는 것이 어떠한가?” 하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권유에 따라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9경 후보지와 9미 후보 먹을거리를 추천받았다. 이를 토대로 토론을 거쳐 9경에 도비도 휴양 단지, 9미에 간재미 회무침이 추가되면서 당진의 9경과 9미는 선정에서부터 타 지역과 다른 특색을 띠게 되었다.

[당진다운 '당진 9경'과 '당진 9미']

당진 9경은 명승지가 아니라 당진을 개발하면서 부수적으로 생긴 인공물이 주로 선정됐다는 특징이 있다. 서해 대교와 방조제[제방 질주], 솔뫼 성지, 도비도, 함상 공원,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이 그렇다. 김대건 신부의 역사성을 부각시키려고 조성한 솔뫼 성지, 줄다리기를 주제로 한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 이외는 대개 관광적인 요소가 강하다. 당진의 해안 환경의 변화는 수산물 채취의 감소와 염전 등 수산산업의 퇴색을 불러왔다. 반면 당진시가 농특산물의 고품질화에 전력을 기울이게 하는 요인도 되었다. 그리고 그런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당진 9미에는 실치회와 간재미 회무침 이외는 수산물이 없다. 그만큼 당진의 대표적인 맛을 자랑하는 데는 당진의 농특산물의 비중이 크다는 이야기다.

당진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것도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이었다. 그러나 1979년 삽교호 방조제 준공을 시작으로 대호지 방조제가 축조되었다. 대호지 방조제는 섬이었던 도비도를 육지로 변화시켰고 한국 농어촌 공사는 여기에 휴양 단지를 만들었다. 또한 송산면송악읍 해안에 산업 공단이 조성되면서 역시 천연의 해안선이 사라지고 부두가 생겨났다. 당진에서 천연의 해안선을 가진 곳은 이제 난지섬에 불과하게 됐다. 당진에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 아산만 상류인 신평면 일대에서 준치가 많았다. 그러나 삽교호 방조제가 만들어진 후 준치는 사라졌다. 당시 준치가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이 잡힌 것을 기억하는 당진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옛 상태 그대로라면 당진 9미에 준치가 당당히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석문면 앞바다에서는 김양식도 성행했다. 자연산 굴도 엄청나게 채취했다. 그러나 석문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모두 사라졌다. 이러한 연유로 3면이 바다인 당진에서 9미를 농특산물에게 자리를 내주고 실치회 하나만 이름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진 9경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인공 구조물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 있다. 바로 서해안 고속 도로가 건설되면서 당진과 평택을 잇는 거대한 서해 대교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당진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된 것이다. 이처럼 인공 구조물이 명소가 되어 9경에 포함되고 바다를 접하고 있음에도 9미에는 농축산물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당진 9경9미의 특징이며 그런 점이 오히려 당진답다고 할 수 있다.

[당진의 기초적인 먹을거리 '꺼먹지'와 '짠지']

당진의 웬만한 식당에서 기초로 내놓는 반찬이 있다. 바로 ‘꺼먹지’와 ‘짠지’다. 당진 토박이가 아니라면, 이런 이름을 들으면 우선 ‘꺼먹 돼지’와 ‘김치’가 연상될 것이다. 그래서 '제주도에 가면 맛볼 수 있는 꺼먹 돼지가 당진에서도 난단 말인가, 또 짠지를 마신단 말인가' 라는 반응도 보일 것이다. 꺼먹지와 찐지는 무청과 무를 당진만의 방식으로 가공한 음식이다. 꺼먹지는 무청을 소금에 아주 짜게 절이면 검은 빛을 띠게 된다. 그래서 ‘꺼먹지’란 이름이 붙었다. 짜게 절여진 무청을 물에 며칠 담가 놓았다가 삶아서 볶거나 무쳐 먹는다. 꺼먹지는 같은 무청을 그늘에 말린 후 겨울부터 삶아서 먹는 시래기와는 가공 방법이 다르다. 당진시 농업 기술 센터는 이 꺼먹지를 주재료로 해서 구성한 ‘상록수 밥상’이란 향토 밥상을 개발했다.

바다가 없는 내륙에서 흔히 ‘짠지’라는 것은 배추를 절여 씻고 무채와 갓, 미나리, 파, 마늘에 생강, 고춧가루로 속을 버무려 넣은 김치를 말한다. 그러나 당진에서 짠지 하면 위에 설명한 짠지가 아니다. 재료로 배추를 쓰지 않고 무를 사용한다는 점이 내륙과 당진에서 짠지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당진에서 굵기가 비슷한 무를 씻어 독에 담되 켜켜로 소금을 듬뿍 뿌린 다음 붉은 고추나 파, 마늘을 굵직하게 썰어 섞어서 매 켜마다 뿌리고, 다 넣은 뒤 맨 위에도 소금과 양념을 뿌리고 큰 돌로 눌러 놓는 방식으로 짠지를 만든다. 늦봄부터 초여름에 얄팍하게 썰어 식초를 탄 물에 띄우고 다진 파와 고춧가루를 넣어 냉국으로 먹는다.

꺼먹지짠지가 당진의 전통 음식이 된 이유는 소금이 풍부했다는 데 있다. 당진에서 방조제가 축조되기 전과 공단이 조성되기 전에는 염전이 많았다. 특히 송산면 일대가 그랬다. 상대적으로 먹을거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무청과 무를 염장하는 방법을 개발하면서 꺼먹지짠지라는 독특한 당진만의 토속음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당진 농민 혁명의 발자취]

당진 9경에는 선정되지 않았지만 테마 여행으로 적격인 곳들이 있다. 당진시 합덕읍 합덕제구 합덕 성당, 합덕제, 소들강문성동리의 반무덤, 승전목, 소난지도 의병 항쟁 추모탑 등이 그것이다. 1894년 1월 11일 발생한 고부 농민 봉기는 갑오 농민 전쟁의 전초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과 수탈이 고부 농민 봉기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 당진에서는 고부와 성격이 거의 흡사한 합덕 농민 운동이 일어났다. 당진 합덕에서는 이정규가 주위 농민들을 수탈했다. 그래서 합덕과 인근의 농민들이 이정규 징벌에 나섰다. 1893년 12월 14일의 일이며 고부 농민 봉기보다 26일 빠르다. 이정규가 살았던 집이 지금의 구 합덕 성당이다.

합덕 농민 운동 이후 10개월 후 동학 농민 전쟁 기간 중에 합덕 농민 운동이 일어났던 인근 합덕제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합덕제는 합덕 농민 운동 당시 봉기의 기폭제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동학군과 관군의 전투에서도 주요 격전지였던 것이다. 합덕 농민 운동에 참여했던 상당수의 농민들이 이후 동학군에 편입됐을 것으로 향토 사학계는 보고 있다. 당시 이 전투에 참여해 죽은 농민들이 들판에 가득했고, 이들 주검을 모아 한 곳에 매장한 것으로 전해지는 무덤이 합덕읍 성동리에 있다. 묘는 논 귀퉁이에 반쪽만 남아 있다. 인근 합덕읍 운산리 공동묘지도 동학군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구룡동 경계가 되는 곳이 승전목[승전곡]이다. 승전목의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홍종식, 조석현 일기와 대교 김씨가 쓴 『갑오년 피란록』에 실린 내용[1894년 11월 21일]을 유추해 보면, 산상에 포진했던 동학군 2만여 명이 길목인 승전곡에서 일본군과 관군 100여 명을 만나 10시경부터 3시까지 5시간의 전투 끝에 일본군을 패퇴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면천을 점령, 예산 지역을 거쳐 홍주성으로 진격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장소는 국도 70호선 확장 공사와 석산 개발로 원형이 훼손됐다. 승전목은 역사적인 장소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이 어떠한가를 반성하게 하는 장소다.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 소난지도에는 의병총이 있다. 소난지도 의병 항쟁은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해 거병한 경기 의병, 홍주 의병, 서산 의병, 당진 의병들이 일본군의 초토화 작전에 밀려 삼남 지방의 조세선 중간 정박지인 소난지도에 주둔하며 해로를 이용, 주재소 습격 등 항일 의병 항쟁을 벌이다가 1908년 3월 15일 일군의 기습으로 100여 명의 의병들이 전사한 사건이다. 당진시는 의병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8년 소난지도 의병 항쟁 추모탑을 건립했다. 2009년 9월 22일 국가 보훈처 현충 시설로 등록되었다.

[순례 길 그리고 깨달음의 길]

당진시에서는 종교적 성찰을 해볼 수 있는 명소가 있다. 바로 버그내 순례 길과 원효 깨달음의 길이다. ‘버그내 순례 길’이란 사이트에 ‘순례’를 다음과 같이 풀고 있다. “가톨릭에서 성지 순례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성스러운 땅인 성지와,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거나 성인들의 유적지인 성역을 방문하여 경배를 드리는 신심 행위이다. 종교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성지나 성역의 순례란 신(神)의 발현이나 위대한 종교적인 인물 때문에 신성시되는 장소를 참배하러 가는 여행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당진시 순성면합덕읍에 가면 이런 순례가 가능한 버그내 순례 길이 있다. 버그내 순례 길은 솔뫼 성지-합덕제합덕 수리 민속 박물관-합덕 성당-합덕제 중수비-원시장 원시보 우물-무명 순교자의 묘-신리 성지로 이어지는 13㎞로 조성되었다. 충청남도 당진시 ‘버그내 순례 길’은 2016년 10월 30일 중국 인촨시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16 아시아 도시 경관상 시상식에서 도시 경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상은 아시아의 뛰어난 경관을 알리기 위해 유엔(UN) 해비타트 후쿠오카 본부와 아시아 인간 주거 환경 협회, 아시아 경관 디자인 학회, 후쿠오카 아시아 도시 연구소 등 4개 단체가 2010년부터 시상하고 있는 경관에 관한 국제상이다. 따라서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걸어봄 직하다.

원효 깨달음 길은 내포 문화 숲길 중 하나다. ‘원효 깨달음 길’의 의미는 백제 때 불교가 한반도에 전파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점에 두고 있다. 특히 해골 물 전설에 담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상기하자는 의미에서 ‘원효 깨달음 길’이란 명칭이 부여됐다. 원효 깨달음 길은 21개 코스가 있는데 당진시와 관련된 구역은 영탑사-안국사지 19.6㎞, 안국사지-영랑사 14.8㎞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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