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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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主國民黨 大邱市黨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49년 5월 28일 - 민주국민당 대구시당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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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55년 - 민주국민당 대구시당 해체 |
최초 설립지 | 조양회관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
성격 | 정당 단체 |
[정의]
1949년 5월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민주국민당 소속 지부.
[개설]
민주국민당은 1949년 2월 10일 한국민주당과 대한국민당이 중심이 되어 창당하였다. 한국민주당의 민주국민당으로 전환은 이승만 세력과의 결별을 의미하였고,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뀐 것이었다. 민주국민당의 정강정책은 한국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국민당은 1949년 8월 대동청년단과 동성회(同成會) 일부를 포섭하여 국회의원 수를 늘리고, 10월 10일 제1차 전당대회를 준비하였다. 민주국민당 대구시당(民主國民黨大邱市黨)은 1949년 5월 28일 조양회관에서 ‘대동 합류’의 슬로건 아래 민주국민당 경북도당과 동시에 결성식을 갖고 출범하였다.
[설립 목적]
민주국민당 대구시당은 내각책임제 개헌을 통하여 권력구조를 개편하고자 하였던 민주국민당의 정강정책을 대구 지역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결성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민주국민당 대구시당은 결성식 뒤 임원을 선정하였다. 위원장 이호정(李浩呈), 부위원장 김태희(金兌熙)·김태주(金兌柱)·곽태진(郭泰珍), 총무부장 보류, 기획부장 김근상, 당무부장 장영모, 재무부장 황봉갑(黃鳳甲), 선전부장 정명진(鄭命辰), 노농부장 한영봉(韓永封), 연락부장 최용구(崔龍九), 외교부장 보류 등이었다. 상임 당무 위원회는 정원 50명으로 구성하였고, 감찰 위원장은 엄성문이 맡았다. 민주국민당 대구시당은 1949년 12월 15일 민주국민당 대구시당 회의실에서 민주국민당 중앙 집행위원 서상일(徐相日)의 참석 아래 민주국민당 경북도당과 민주국민당 대구시당 당부(黨部) 상무 집행위원회 연석회의를 열고 당면 제반 사항을 토의하였다.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낙선하여 국회 입성에 실패한 민주국민당 대구시당은 1954년 5월 20일 실시된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갑구와 을구에서 서동진(徐東辰)과 조병옥(趙炳玉)이 각각 당선되었다. 병구에서는 무소속의 이우줄(李雨茁)이 당선되었다. 민주국민당 대구시당은 민주국민당이 1954년 결성한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55년 9월 18일 민주국민당이 원내외 범야권 세력을 규합하여 민주당을 창당하면서 민주국민당 대구시당은 1955년 해체 후 대체로 민주당에 흡수되었으나 서상일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보당에 참여하였다.
[의의와 평가]
민주국민당 대구시당은 중앙당과 달리 대구에서의 영향력을 일정하게 유지하였으나, 이후 1955년 창당된 민주당에 대체로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