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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당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841
한자 天王堂池
영어공식명칭 Cheonwangdangji
이칭/별칭 남소(南沼),남지(南池)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우종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저수지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저수지.

[개설]

천왕당지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저수지이다. 조선 중기인 15세기 문인이었던 서거정「대구십영」5영 남소하화(南沼荷花)에서 남소의 다른 이름이 ‘천왕당지’로 추정된다. 천왕당지의 다른 이름인 남소(南沼) 또는 남지(南池)는 달성토성의 남쪽에 있는 연못에서 유래한다.

[건립 경위]

천왕당지의 다른 이름인 남소의 건립 시기에 대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다. 1768년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읍지』에도 천왕당지와 관련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다만, 1903년 제작된 「대구시가지도」에는 같은 위치에 존재하는 못을 확인할 수 있다. 못은 존재만 확인될 뿐 이름이 없었는데, 1915년 일제가 제작한 지도에 ‘천왕당지(天王堂池)’로 등장하고, 위치가 남소와 일치하였다. 1918년에 제작한 「대구지형도」에는 같은 위치에 못은 존재하지만 ‘천왕당지’란 이름은 없다. 이와 같이 ‘천왕당지’와 천왕당지의 다른 이름인 ‘남소’가 1900년대 이후의 자료에서 시기를 달리하면서 이름이 분명하게 기록되지 않은 것은 못의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변천]

일제가 비산동내당동에 있었던 고분의 흙으로 남소를 메워 1928년 서문시장을 만들면서 천왕당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문시장은 원래 달서문터 부근에 있었으나, 일제가 1919년 3월 8일 일어난 대구 독립만세 운동의 발원지인 서문시장을 달서문터 부근에 그대로 두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남소를 메워 현재의 위치로 강제 이전시킨 것으로 전하여진다.

[구성]

서거정「대구십영」5영 남소하화의 표현으로 볼 때 천왕당지에는 연꽃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황]

천왕당지를 메워 만들어진 서문시장은 조선시대 지방의 3대 시장으로 꼽힐 정도로 번창하였으며, 1950년대에는 전국 최대 의류 도매시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또한 서문시장은 대구 지역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약재 특화 시장인 약령시(藥令市)에 이어 오래된 역사를 유지하는 시장이다. 서문시장은 개장 이래 공식적으로 크고 작은 17차례의 불이 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서문시장이 화재가 잦은 것은 천왕당지에 살던 용왕이 노하였다거나 천왕당지에 빠져 죽은 처녀 귀신의 원한 탓이라는 속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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