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도문리에 위치한 용재 이행과 이의무 부자의 능묘가 있는 곳의 안쪽에 있는 마을. 중종 때 좌의정 용재(容齋) 이행(李荇)과 전 홍주 목사 이의무(李宜茂) 부자의 능묘가 있는 곳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능안 마을이라 한다. 한자 표기로는 능내(陵內)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한양이나 개성을 중심으로 왕릉이 많아서 촌락 지명에 ‘능...
박진승이 시조이고 박지가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무안박씨(務安朴氏)는 상서공파(尙書公派)이다. 입향조인 박지(朴智)[?~?]는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에 충절을 지키기로 다짐하고 우두동에 입향하여 세이암에 앉아 낚시로 소일하면서 농업과 학문에 종사하였다. 후손들은 크게 번성하여 당진의 유력한 성씨...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鳳)이 낳았다 하여 봉생리(鳳生里)라 하였다. 구씨가(具氏家)에서 장사를 치르는데 하관 직전에 지사와 상주 간의 모종의 알력으로 지사가 조금 더 파야 된다고 하여 다시 파기 시작하였고 밑바닥 돌장을 떠 일으키자 봉황새 한 쌍이 날았다. 이때 급히 다시 덮는 과정에서 봉황의 발 하나가 부러졌고 하나는 날아서 은봉산에 숨었다는 전...
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에 있는 무안박씨 세거지.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시조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이며 중시조는 시조의 34세손인 박진승(朴進昇)이다. 박진승은 고려 초기 국자감 제주(國子監祭酒)를 지냈고 나라에 공을 세워 무안군(務安君)이 되었으며 전라남도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았다. 그 후 후손들이 무안을 관향으로 정하고 세거지로 삼았다. 박진승은...
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고려 말 충신. 윤황(尹璜)[?~?]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시기의 문신이다. 조선이 건국하자 출사하기를 거부하고 고려의 충신으로 남았다.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하여 사망하자, 태종이 무학 대사를 보내 장지를 정해 주었다고 전한다. 현재 서산 송곡향사에서 윤황을 배향하고 있으며, 당진의 묘소 앞에는 신도비가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 시곡리에 세워진 윤황의 신도비. 윤황(尹璜)은 고려 말의 충신으로 자호는 후송이며, 광성대부 문하평리 공조 전서[판서]를 역임하였다. 윤황은 도평의녹사 문하평리 윤수균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성계가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개국하자 당시의 최고 행정 관청인 문하부의 문하평리 벼슬에 있던 윤황은 조선의 신하가 되지 않기로 마음...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세거지를 형성한 동성동본의 성씨 마을. 집성촌(集成村)은 성(姓)과 본(本)[본관, 관향]이 같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이를 '동족(同族) 마을', '동족 촌락(同族村落)', '동성(同姓) 마을'이라고도 한다. 집성촌은 조상을 함께 하는 특수한 혈연관계 속의 주민들이 특정 지역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형태이다. 공동체 조직이 발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