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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099
한자 海倉-
영어공식명칭 Haechang Ferry
이칭/별칭 당진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시설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추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최초 설립지 해창나루터 -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현 소재지 해창나루터 -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지도보기
성격 나루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에 있었던 나루터.

[건립 경위]

고대면 당진포리 온동 마을 북서쪽에 자연 마을인 해창(海倉) 마을이 있다. ‘해창’이란 지명은 해상 교통이 편리한 당진포 바닷가에 국가에서 세운 조세 보관 창고인 해창(海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당진포리에서 뻗어 나온 구릉의 말단부인 망재산이 서해와 만나 멈춘 지점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예로부터 해산물과 육산물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해창에서 출발하여 가로림만을 지나 소난지도 앞으로 한양의 경창으로 가는 조운선이 운행되었다. 고대면 당진포리 포구에는 조선 세조 때 해안 방위를 맡았던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주둔하였다. 고대면 해창은 석문면 초락도대호지면 방구 바위 나루를 오가는 나루로 가로림만 안쪽에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고대면 당진포리 북서쪽 바닷가 끝에 위치하여 군사적으로 당진 내륙으로 들어오는 적을 막을 수 있는 당진포진성이 위치하였다.

[변천]

당진포(唐津浦)는 백제 말부터 당나라를 왕래하던 사신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던 포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당진포에 주변의 만길동, 사동, 고산동을 병합하여 당진포리라 하였다. 본래는 가로림만으로 바닷길이 통해서 조선 시대에는 중요한 항구였으나,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초락도가 연륙되고,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삼길포와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 도비도를 연결하는 대호 방조제가 1984년 완성되면서 방수문이 바닷물과 육지를 가로막아서 그 안쪽은 인공 호수로 변하였다.

[문헌 기록에 의한 해창나루터]

조선 시대 지리학자 김정호가 지은 『대동지지(大東地志)』 당진현 진보(鎭堡) 조에 보면, "당진포진(唐津浦鎭)에는중종 9년에 축조한 둘레가 1340척인 진성(鎭城)이 있고, 수군만호가 주둔한다."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당진만호의 분병(分兵)이 "난지도 섬에 주둔하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소난지도는 남해안에서 한양을 오가는 조운선들의 피난처이자 기항지였다.

또, 『대동지지』 당진현 전고(典故) 조에 기록된, 백제 660년(의자왕 20) 당 제독 소정방이 상륙한 당진[백제 의자왕 이십년 당 장군 소정방 주군덕물도박 당진하륙(百濟義子王二十年唐將軍蘇定方駐軍德勿島泊唐津下陸)]과 1597년(선조 30) 수군 제독 진린이 상륙한 당진[선조 삼십년 수군 제독 진린 영석병오백소도해박 당진(宣祖三十年水軍提督陳隣領淅兵五白艘渡海 泊唐津)]이 아마도 당진포가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그 당시 한진[大津] 나루는 홍주에 속해 있기에 당진현에 속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진에 상륙한 것이 아니고, 당진현에 소속된 당진포 해안에 상륙했기에 ‘당진현’ 편에 기록한 것으로 추측한다.

『충청도 읍지(忠淸道邑誌)』 당진 창고 조에는, "해창은 당진현에서 서쪽으로 삼십 리 떨어진 당진포 해변에 있는데, 동고가 6간이고 복물고가 5간이며 기사년에 뱃머리에 새로 세웠다[해창 동고육간 복물고오간 재현 서삼십리 당진포변 기사 신건선두(海倉東庫六間伏物庫五間在縣西三十里唐津浦邊己巳新建船頭)]"라고 나온다.

조선 총독부 발행 『한국 수산지』에 보면, "당진포는 고산면[현 고대면] 서안의 북부 작은 반도에 위치하고 있는데, 민가가 21호이고 예전에 수군만호가 주둔하던 당진포영(唐津浦營)이 위치하던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

대호지면의 이름을 빌어 대호(大湖)라고 하는 호수 주변 해창 일대가 모두 간척된 뒤로 해창을 비롯한 포구 마을 주민 대부분이 논농사로 생업을 이어 가고 있다. 지금은 옛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교란되었다. 해창나루터로 초락도가 연육되기 전에 왕래했으며, 1960년대 초까지는 인천 가는 정기 여객선인 똑대기 배가 왕래하였다. 당진포진성은 지금 황폐해 있으며, 현재 해창 마을은 쓸쓸한 한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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