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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323
한자 書院-
영어공식명칭 Seiwonmeori
이칭/별칭 선머리,슨머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명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추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비정 지역 서원머리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명산리 지도보기
성격 자연 마을
관련 문헌 『당진의 지명 유래』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명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당진시 송산면 명산리에 있었던 동악 서원(東岳書院) 입구에 해당되는 마을이라 ‘서원머리’라고 부른다. 음운 축약되어 ‘선머리’, 그 후 음운 변화에 의해서 ‘슨모리’로도 부른다.

[형성 및 변천]

서원머리는 옛 면천군 승선면 서원리(書院里)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명산리에 통합되면서, 옛 마을인 서원리가 축소되어 자연 마을인 서원 마을로 되었다. 서원 마을의 머리 부분, 즉 입구 쪽에 해당되기에 ‘서원머리’, ‘선머리’ 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옛날 이곳에는 바닷물이 들어와서 중선이 들어오던 서원포(書院浦)가 있었다. 현재는 개간되어 논이 되었다.

서원머리는 조선 1706년(숙종 32)에 건립된 예조 판서 좌찬성 문예공 이안눌(李安訥)의 향현사(鄕賢祠), 즉 동악 서원이 있어서 ‘서원머리’로 되었다. 동악 서원은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1864년(고종 1)부터 대대적인 서원 철폐령으로 460여 개소의 서원이 철폐되고 47개소만 남길 때, 1868년(고종 5) 9월에 철폐되었다.

동악 서원은 송산면 명산리 서원동에 있었으나 현재는 폐허가 되어 터만 남아 있고, 서원에 사용된 주춧돌은 근처의 민가나 주변에 흩어져 있다. 현재 주춧돌 1개, 큰 돌기둥 2개, 계단석 1개, 주춧돌 1개가 남아 있다.

이안눌의 산소는 현재 당진시 정미면 사관리에 있다. 묘 앞에는 송준길(宋浚吉)이 서(書)하고 김상헌(金尙憲)이 찬(撰)했다는 커다란 신도비가 서 있다.

[관련 인물]

이안눌[1571~1637]은 조선 선조 4년에서 인조 5년에 걸쳐서 살았던 조선 시대의 유명한 시인으로, 호가 동악(東岳)이다. 동악의 자는 자민이고, 본관은 덕수(德水) 이씨이다. 동악 이안눌은 동래 부사[1607], 담양 부사[1610], 경주 부윤[1614]을 거쳐서 충청도 관찰사[1634] 등을 역임했다. 이안눌송산면 도문리 능안에 묘소가 있는 용재 이행의 증손자로, 선조 대 시인 권필과 쌍벽을 이루는 시인으로 이태백에 비유되기도 한다.

당진 지역에 묘소가 있는 용재 이행, 구봉 송익필, 동악 이안눌 3인의 시문에 대한 문학적인 재평가가 빨리 이루어져야 하겠다. 서울특별시 장충동의 동국 대학교 구내에는 동악이 시를 지면서 소일했던 동악단이 있었고,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었는데, 아쉽게도 강의실을 지으면서 글자가 있는 돌을 떼다가 동국 대학교 박물관에 진열하고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현재 송악읍 기지시리에서 한진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송산면 명산리 입구에 있는 마을이 있는데 슨머리, 선머리, 서원머리 등으로 부른다. 이곳에 동악 서원이 있었고 그 입구에 해당되는 마을이라 ‘서원머리’라고 부른 것이 음운 축약되어 ‘선머리’, 그 후 음운 변화에 의해서 ‘슨모리’로 변한 것이다. '서원'은 조선 시대 중기부터 보급된 유생들의 사학 기관을 말하며 ‘머리’는 짐승의 목 위에 해당되는 부분 또는 일부 사물의 꼭대기, 앞뒤가 있는 일부 물체의 앞부분을 머리라고 하는데, 대체로 평야 지대나 산기슭이나 봉우리가 툭 튀어나온 곳의 지형을 말한다. 즉, 서원머리는 ‘서원의 앞부분에 해당되는 곳’이란 뜻이다.

[관련 기록]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조선 1706년에 건립된 예조 판서 좌찬성 문예공 동악 이안눌의 서원인 향사우(鄕祠宇)가 있었다. 이 서원이 『조선 환여 승람(朝鮮寰輿勝覽)』 원사 조에는 향현사(鄕賢祠)로 나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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