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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시대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380
한자 鐵器時代
영어공식명칭 The Iron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김남석

[정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철기 문화.

[개설]

청동기의 전래에 뒤이어 우리나라에 철기 문화가 전래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였다. 특히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업이 발달하여 경제 기반이 확대되었다. 철제 무기와 철제 연모를 씀에 따라 그때까지 사용해 오던 청동기는 의식용 도구로 변하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청동기 문화도 더욱 발달하여 한반도 안에서 독자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청동기 시대 후반 이후, 비파형 동검은 한국식 동검인 세형동검으로, 거친무늬 거울은 잔무늬 거울로 그 형태가 변해 갔다. 그리고 청동 제품을 제작하던 틀인 거푸집도 전국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다.

철기 문화가 발달하면서 충남 당진 지역에도 족장이 지배하는 사회가 한층 강화되었다. 이들 중에서 강한 족장은 여러 족장 사회를 통합하면서 부족 연맹체 왕국으로 진화하였다. 족장사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된 고조선이다. 그리고 고조선의 뒤를 이어 등장한 연맹 왕국이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 등이다.

삼한은 한반도의 남쪽 지역에서 성장한 연맹 왕국이었다. 초창기의 명칭은 ‘진(辰)’이었다. 진은 기원전 2세기경, 고조선의 방해로 중국과의 교통이 저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은 고조선 사회의 변동에 따라 대거 남하해 오는 유이민을 통하여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였고, 이러한 선진 문화는 토착 문화와 융합되면서 더욱 발전된 사회를 일구었다. 그리하여 마한·변한·진한의 연맹체들이 나타났다.

삼한 중에서 세력이 가장 큰 것은 마한이었다. 마한은 천안·익산·나주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서 발전하였다.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고, 모두 10여 만 호였다. 그중에서 큰 나라는 1만여 호, 작은 나라는 수천 호였다. 마한의 대표 연맹 왕국이 목지국이었다. 목지국의 지배자은 ‘마한 왕’ 또는 ‘진왕’으로 불리면서 삼한의 주도 세력이 되었다.

목지국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이 있지만 대부분 천안을 중심으로 내포 지역을 아우르는 것으로 공통된다. 그런 면에서 내포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 당진 지역도 목지국의 세력권 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진 지역은 내포의 젖줄인 삽교천이 흐르고 있고, 그 주변에는 풍요로운 농경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향토사학자들은 마한의 54개 소국 중에서 ‘고원국(古爰國)’이 당진군 우강면에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유적 현황]

초기 철기시대 유적은 소소리 유적과 도성리 유적이 있다. 소소리 유적은 주민에 의해 신고된 유적으로 유구의 내용과 출토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자료가 부족한 이 시기의 연구에서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은 세형동검 1점, 검파두식 1점, 세문경 2점, 동과 1점, 지석 1점, 석촉 1점, 유리관옥 2점, 흑도장경호편 1점, 철착 2점, 철부 1점 등이다. 도성리 유적에서는 초기 철기시대의 수혈 5기가 확인되었으며, 내부에서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 유적은 기지시리 유적, 성산리 유적, 석우리·소소리 유적, 도성리 유적, 당진 성산리·통정리·삼화리 유적, 가곡리 유적, 창리 유적 등이 있다. 기지시리 유적에서는 주거지 1기·구상유구 1기가 확인되었으며, 성산리 유적에서는 주거지 4기·수혈 1기·구상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도성리 유적에서는 주거지 2기가 확인되었다. 2012년에 조사된 창리 유적에서는 수혈 2기가 조사되었는데, 방형과 원형의 수혈에서 심발형 토기, 장란형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당진 지역은 대륙 문화를 수용하기에 적절한 지리적 위치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바닷물이 들어오는 만(灣)을 많은 곳에 갖추고 있어서, 해상 교통이 발달하였다. 질펀한 평야가 광범위하게 분포하였고 기후가 따뜻한 것도 장점이다. 또한 대부분의 지형이 구릉지로 이루어져 촌락 형성에 적합하고, 농경과 어로를 통하여 풍요로운 산물을 얻을 수 있었다. 당진 지역의 자연 환경은 철기시대 인류의 삶에 매우 쾌적한 조건을 형성하였고 백제의 발전에 토대를 제공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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