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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381
한자 三國時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고대/삼국시대
집필자 김남석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 형성된 삼국시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삼국시대의 국왕은 점차 자신의 통치력을 강화하면서 주변 부족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 나갔다. 또한 율령을 반포해 통치 체제를 정비했고, 집단의 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불교를 받아들여 중앙 집권적인 고대 국가를 형성하였다.

당진 지역은 지리적 위치상 백제에 포함되었다. 백제의 일반 행정 체제는 방(方)·군(郡)-성(城)이었다. 이들은 성왕이 중앙의 지배조직을 새로이 정비함과 동시에 지방 통치 조직도 정비하는 과정에서 마련한 것들이다.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5방이다. 5방은 전국을 크게 5구역으로 나눈 것으로서 동방·서방·남방·북방·중방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사비[부여] 도읍기에 정비된 것인데, 당진 지역은 5방 중에서 북방이나 혹은 서방에 속할 것으로 여겨진다.

군은 방과 기본 성격에서는 동등하나 군사적 측면에서는 방령의 관할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군의 수는 37개였다. 각 방에는 6~7개 내지 10개의 군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각 군에는 기본적으로 5~6개의 작은 성이 소속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군의 장은 군장(郡將)이라고 한다.

방과 군의 통할을 받는 하위의 지방 지배 조직이 성(城)이다. 성은 현으로도 표기되었다. 성은 종래 담로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였던 성 중에서 지역 규모나 인구 또는 물산 면에서 독립적인 지방 조직이 될 만한 곳을 분리하여 만든 것이다. 성에 파견된 지방관의 명칭을 성주(城主) 혹은 도사(道使)라고 하였다.

[변천 과정]

조선 시대 정리·제작된 각종 읍지류의 건치 연혁 편에 보면, 당진 지역에 있었던 백제 시대의 군과 현이 등장하고 있다. 우선 면천에는 혜군(槥郡)이 있었고, 당진에는 벌수지현(伐首只縣)[일명 부지현(夫只縣)]이 있었으며 정미면대호지면은 여촌현(餘村縣)에 속했다. 또한 신평은 사평현(沙平縣)에 속했다. 대부분 ‘현’인데, 면천 지역만 ‘군’으로 표기되었다. 면천의 관할 구역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매우 컸음을 짐작하게 한다.

벌수지현의 치소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지만 당진의 향토 사학자 신양웅은 당진시 고대면 성산리 ‘버스랑이’ 마을로 추정했다. 그 근거로 이 마을이 당과 왕래가 빈번했던 당진포가 부근에 있고, 고증이 되지 못한 옛 성터, 즉 퇴미산성이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 원삼국시대 각종 토기 조각과 주거지, 독무덤[옹관묘]가 다수 출토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유적 현황]

당진 지역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유적을 보면, 당진읍 원당리 유적에서 백제 시대 주거지 및 수혈과 같은 생활 유구가 발견되었다. 2009년에는 당진읍 우두리 유적에서도 백제 시대 석실묘 4기가 발견되었으며, 석문 국가 산업 단지 조성 부지에서도 백제 시대 주거지 4기, 수혈 유구 4기가 확인되었다. 2010년에는 당진군 송산면 제2 일반 산업 단지 조성 부지에서도 백제 시대 주거지 6기가 발견되는 등 같이 당진에서 출토된 유적 및 토기 중에는 백제 시대 것으로 보이는 것이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중국 문화와 비교할 수 있는 유물도 다수 발견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당진에 정착했던 집단이 대외 무역에도 깊이 관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2006년에 출토된 당진읍 채운리 유적도 귀중한 백제 시대 유적이다. 이 유적은 삼성 웰스빌 아파트 신축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백제 시대 널무덤[토광묘] 17기, 시대 미상 수혈 1기, 용도 미상의 유구 1기 등 총 19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널무덤의 구조는 지하로 무덤구덩이[묘광(墓壙)]을 파고 그 안에 목관(木棺) 혹은 목곽(木槨)을 설치하였다. 유물로는 토기, 철기, 청동 장식품,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1점을 제외하고 모두 목 짧은 항아리인 단경호(短頸壺)이며, 철기의 종류로는 칼[鐵刀子], 낫[鐵鎌], 도끼[鐵斧], 화살촉[鐵鏃] 등이다. 그 외에 청동 장식품 1점과 78점의 구슬이 출토되었다. 당진읍 채운리 백제 널무덤의 발굴은 당진군 일대에서 백제 고분을 첫 조사한 것이며, 서해안 일대 백제사를 재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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