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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89
한자 唐津安國寺地埋香岩刻
영어공식명칭 Site of Dangjin Anguksa Temple in Maehyang Rock Engraving
이칭/별칭 매향비,배바위 암각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687-1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4년 4월 10일연표보기 - 당진 안국사지 매향 암각 충청남도 기념물 제163호로 지정
현 소재지 당진 안국사지 매향 암각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687-1 지도보기
원소재지 당진 안국사지 매향 암각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687-1
성격 암각 매향비
재질
크기(높이, 너비, 두께) 좌측 매향비 음각면: 가로 75㎝, 세로 70㎝|우측 매향비 음각면: 가로 약 50㎝, 세로 82㎝|배바위 전체 크기: 가로 약 1,480㎝, 세로 350㎝
관리자 김옥화[원상]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제163호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에 있는 배바위 매향 암각비.

[개설]

당진 안국사지 매향 암각(唐津安國寺地埋香岩刻)은 고려 시대 향도(香徒)가 주도하여 매향(埋香)[내세(來世)의 복을 빌기 위하여 향(香)을 강이나 바다에 잠가 둠]하고 그 시기와 위치를 정미면 수당리배바위에 기록해 둔 매향비이다.

[건립 경위]

당진 안국사지 매향 암각은 비석이 아니라, 쉽게 찾을 수 있는 바위 앞면에 향나무를 묻은 시기와 위치를 기록한 것이다. 매향의 주체는 ‘향도’인데, 매향을 한 이유는 미륵 신앙의 표현이다. 또한 후손발복(後孫發福), 즉 후손들에게 복이 오기를 기원한 것이다.

[위치]

당진 안국사지 매향 암각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687-1 안국사지에 있는 배바위의 앞면 두 곳에 있다.

[관련 내용]

당진 안국사지 매향 암각은 고려 시대 당진 지역 민중 생활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고려 시대 농민들은 국가 신앙인 불교에 심취해 있었고, 불교에 바탕을 두면서 일상 의례와 공동 노동을 전개하기 위한 공동체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 조직의 대표적인 신앙 조직이 향도였다. 향도는 향을 피우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삼국 시대부터 있었다. 특히 김유신이 만든 화랑도를 일컫는 용화향도(龍華香徒)가 유명한데, 미륵불이 용화수에 내려와 세상을 구원한다는 믿음에서 생겼다고 한다.

향도는 주로 절에서 모였는데, 일종의 신도 모임과 비슷했다. 향도에 모인 사람들은 부처나 종, 탑, 절을 만드는 일을 직접 하거나 이에 필요한 노동력을 분담했다. 또, 믿음을 위한 법회(法會)나 보시(布施)는 물론이고 매향을 하기도 했다. 매향은 죽은 뒤의 복을 빌거나 후손에게 복을 전승키 위해 산곡수와 해수가 만나는 곳에 향을 묻는 일을 말한다. 향은 오랫동안 땅에 묻어 두면 단단해지고 굳어져 물에 넣으면 가라앉기 때문에 침향(沈香)이라 했다. 침향은 불가에서 향 중의 으뜸으로 삼았고, 침향의 연기를 맡고 향물을 바르면 온몸이 청정해지고 무량의 공덕을 얻는다고 믿었다.

[형태]

당진 안국사지 매향 암각안국사지 삼존 불상 뒤편, 속칭 ‘배바위’라고 불리는 거대한 바위에 새겨져 있다. 바위에 새겼기에 암각이라고 할 수 있고, 비라 부르기에는 어색한 면이 있다. 하지만 문자의 서술 형식이 비문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암각비(岩刻碑)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암반의 마모가 심하여 전체 비문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우나 상당수의 글자는 판독되어 매향비임을 알 수 있다. 배바위 좌측의 ‘매향비’ 외에 바위의 우측에도 ‘매향비’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우측의 매향비는 마모가 심하여 글씨 전체를 판독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좌측 비교적 선명한 매향비 음각 면의 크기는 가로 75㎝, 세로 70㎝이다. 또한 우측 매향비 음각 면의 크기는 가로 약 50㎝, 세로 82㎝이다. 배바위 전체 크기는 가로 약 1,480㎝, 세로 350㎝이다.

[금석문]

당진 안국사지 매향 암각의 비문은 ‘경오이월일 여미 북천口 포동제 매향 일구 화주 연선 결○ 향도(庚午二月日余美北天口浦東際埋香一丘化主兗先結○香徒)’이다. 이를 해석하면 ‘경오는 이월일 여미 북쪽 천구포 동쪽가에 매향하였다. 비구 화주 연선과 결○ 향도이다’이다. ‘경오(庚午)’년은 1270년(원종 11), 1330년(충혜왕 1), 1390년(공양왕 2), 1450년(세종 32) 중 하나에 해당될 수 있다. 그리고 비문에 보이는 ‘여미(余美)’는 여미현을 말하는 것으로, 여미현과 정해현이 합해서 해미현이 되기 이전, 즉 1407년(태종 7) 이전에 새겼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중국 연호가 아닌 ‘경오년’으로 썼다는 점에서 원나라 초기인 1270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천구포’는 현재의 천의포로 추정된다.

오른쪽에 새겨진 암각은 '경술 시월일 염솔 서촌 출유 목공 합매(口庚戌十月日鹽率西村出由木工合埋口)'로 읽혀져 왔다. 내용 중 ‘출유’는 ‘출포(出浦)’로 매향을 한 장소, ‘목공합매구’는 ‘목향매치(木香埋置)’ 또는 ‘목향매口(木香埋口)’로 읽어 역시 매향 관련 암각으로 본다. ‘염솔’은 봉화산 서쪽의 마을을 가리킨다.

[현황]

배바위안국사지 석조 여래 삼존 입상[보물 제100호]과 안국사지 석탑[보물 제101호]에서 20m 정도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폐허화된 절터에 남아 있는 유적이었으나, 최근 승려들이 들어와 건물을 세우고 각종 시설을 설치하면서 주변 경관이 달라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 정미면 수당리 주민들은 자신들이 윤회하여 환생하거나, 후손들이 향나무를 건저 올려 미륵 앞에 향연을 피울 것을 기원했다. 그리고 이들은 매향을 하고 난 후 이를 기념하면서 매향 위치를 큰 돌에 새겨 미래의 후손들에게 알렸다. 자신과 후손의 발복을 위한 세심한 배려였다. 당진 안국사지 매향 암각은 고려 시대 불교 민중 사회의 현실과 미래관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