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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543
한자 朴順明孝子門
영어공식명칭 Memorial Monument House for the Filial Piety of Bak Ssunmyo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학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56년 2월 - 박순명 효자문 중수[1856]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6년 - 박순명 효자문 중수[1916]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3년 2월 26일 - 박순명 효자문 개축
현 소재지 박순명 효자문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박순명 효자문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
성격 효자 정려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는 조선 후기 박순명의 효자 정려.

[개설]

박순명 효자문이 세워진 연대는 1600년대로 추정되는데, 박순명의 효행은 전설로 전하고 있다.

박순명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늙은 어머니를 내외가 극진히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박순명이 징병으로 전쟁터에 나가게 되자 어머니가 날마다 정한수를 떠놓고 나라의 태평함과 아들의 무훈장수를 기원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마을 어귀에 나가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니가 쓰러져 그 뒤부터 자리에 눕게 되었다. 박순명의 아내 또한 효심이 지극하여 어머니의 병 간호를 극진히 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박순명이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불구의 몸이 되어 있었다. 박순명은 그 후부터 이곳저곳 이름난 의사를 모셔다 어머니 병을 고치려고 노력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박순명은 어머니가 위독해지자 두 번이나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여 살리려 애를 썼다. 박순명은 어머니가 죽자 자신의 효도가 부족했던 탓으로 여겨 3년간을 무덤 옆에서 여막을 짓고 시묘하며 슬퍼하다가 끝내 영양실조로 사망했다는 이야기이다.

[위치]

박순명 효자문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에 있다. 송산면사무소에서 633번 지방도를 따라 성구미 포구 쪽으로 가다가 삼월리무수리 경계 부근 언덕에 효자문이 있으며 이 고개를 효자문 고개라 한다.

[변천]

박순명 효자문은 6대손 박덕돌이 1856년(철종 7년) 2월에 중수한 이후 1916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그 후 1973년 2월 당시 송산면장 이재은이 군비를 들여 보수하였는데 원래의 자리보다 약간 위쪽에 개축한 것이 현재 효자문의 모습이다.

[형태]

정려각은 시멘트 바닥에 시멘트로 원주형 초석을 만들고 원주를 올렸으며 하방은 치지 않고 중방을 쳤다. 일체의 장식이 없는 슬레이트 지붕이다. 효자문에는 6대손 박덕돌의 중수 기록이 새겨진 정려 현판이 건물 안 중앙에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박순명 효자문박순명의 효성에 관한 전설로 ‘효자문 고개’라는 지명 유래로 전해 올 만큼 향촌 사회에 널리 알려진 효자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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