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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397
한자 課農小抄
영어공식명칭 Gwanongsocho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상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798년연표보기 - 『과농소초』 편찬
소장처 서울 대학교 박물관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간행처 경희 출판사(慶熙出版社) - 서울
간행처 경인 문화사(京仁文化社) - 서울
성격 농업서
저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간행자 박영철(朴榮喆)
권책 15권 6책
행자 10행 20자 주쌍행(注雙行)
규격 사주 쌍변(四周雙邊) 20.7×14.7㎝|반곽(半郭) 25.4×17.9㎝
어미 무어미(無魚尾)

[정의]

조선 후기에 지금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인 면천 군수로 재직했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편찬한 농업서.

[개설]

1798년(정조 22)에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 중국의 기술을 도입하고, 재래 농법과 경험을 개량할 것을 주장한 농업 기술과 정책에 관하여 쓴 책이다. 그 개혁 정책의 방법으로 한전법(限田法)을 제시하고 있으며 당시 여러 농서들 가운데 체계가 가장 완벽하다고 평가되었다.

[저자]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字)는 중미(仲美), 호(號)는 연암(燕巖)이다. 저서로는 『연암집(燕巖集)』과 『열하일기(熱河日記)』가 있다.

[편찬/간행 경위]

조선 후기의 학자인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이 1900년 『연암집』을 간추려 6권 2책의 활자본으로 편찬했는데 여기서 『과농소초(課農小抄)』의 안설(按說)[자신의 생각을 풀어 쓴 설명] 부분만 모아서 '농설(農說)'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1932년 다산(多山) 박영철(朴榮喆)이 새로운 활자본으로 16권 6책으로 편찬했는데 거기에는 『과농소초』의 전문을 수록하였다. 다만 1932년 5월 박영철은 이 『과농소초』 전문을 수록한 17권 6책의 새로운 『연암집』으로 출간을 하고 있다. 박영철본은 1966년 경희 출판사(慶熙出版社)에서 영인하였으며, 1979년 경인 문화사(京仁文化社)에서 재영인하였다.

[형태/서지]

15권 6책의 필사본(筆寫本)이다.

[구성/내용]

제자(題字)에 서문(序文) 대신 편제(編題) 1문과 진과농소초문(進課農小抄文) 1편이 실려 있다. 이어 목차에 따라 제가(諸家), 총론(總論), 수시(授時), 점후(占候), 전제(田制), 농기(農器), 경간(耕墾), 분양(糞壤), 수리(水利), 택종(擇種), 파곡(播穀), 제곡 품명(諸穀品名), 서치부비황(鋤治附備荒), 수확(收穫), 양우(養牛) 등의 항목과 전제 개혁론(田制改革論)을 담은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항목으로 분류하여 서술하고 있다. 당시의 농서 대부분이 거칠고 자세하지 않기 때문에 농지의 경영에 불합리한 점이 많아 농업의 효과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농법 개선을 통해 농지 경영을 발전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른바 경종법(耕種法)[농작물의 선택이나 재배의 순서 등을 자연적 조건에 맞추는 농경법]을 개량해 지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며, 영농 과정에서 노동력이 가장 많이 소요되는 중경 제초(中耕除草)[땅을 깊숙이 갈아 잡초를 제거함]를 개선하고 농시(農時)를 지키는 것으로 노동력을 줄이고 임금 고용(賃金雇用)의 지출을 절감하여 원하는 수확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밖에 분양법(糞壤法)의 개선과 수리법(水利法)의 개량이 있는데, 특히 수리 조항과 토지소유 문제를 설정한 것은 우리나라 농서로서는 처음으로 다룬 것이다. 그리고 한전제(限田制)를 다루면서 농업 생산력을 늘리는 것과 토지 소유 또는 점유를 균분하는 등의 농정에 대한 전반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 중농학(重農學)과 실시구시(實事求是)의 연암 박지원의 실학사상을 몸소 실천으로 저술한 새로운 농법서이며 과학 농서인 『과농소초』는 토지 개혁서인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와 함께 애민 정신(愛民情神)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예로부터 전해오는 우리 농업의 기반 위에 그 결함과 모순을 시정하여 농촌 경제를 안정시키고 토지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이른바 ‘농업 및 토지 개혁론(農業-土地改革論)’을 주창한 독보적인 연암의 농정관(農政觀)은 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모순을 개혁하고자 한 강한 의지를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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