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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455
한자 江陵金氏
영어공식명칭 Gangreung Gi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23년 - 강릉김씨 당진 입향조 김득인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494년 - 강릉김씨 당진 입향조 김득인 사망
본관 강릉 - 강원도 강릉시
입향지 강릉김씨 당진 입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 오도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강릉김씨 세거지 - 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강릉김씨 세거지 - 충청남도 당진시 시곡동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강릉김씨 세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김주원(金周元)
입향 시조 김득인(金得仁)

[정의]

김주원이 시조이고 김득인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강릉김씨(江陵金氏)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이며, 김춘추(金春秋)에서 나뉜 무열계 진골의 직계이다. 신라의 중대에서 하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김주원(金周元)이 강릉으로 퇴거하여 관향으로 삼으면서 강릉김씨가 되었고, 경주 김씨 중에서 맨 처음 분파된 가문이다. 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시곡동에 집중 거주하는 강릉김씨는 조선 시대 성종 때의 문신인 김득인(金得仁)[1423~1494]에 의해 형성된 집성촌이다. 이들은 김응추(金應秋)와 김우추(金遇秋)에 의하여 원당파와 시곡파로 나뉘어 근 300년 동안 거주해 왔다.

[연원]

강릉김씨의 시조는 김알지의 21세손이며 태종 무열왕의 6세손인 김주원이다. 김주원선덕왕 때에 각간으로서 시중 겸 병부령을 지내 당시에는 최고의 권력자였다. 마침 내물계인 선덕왕이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김주원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내물계인 상대등 김경신[원성왕]이 왕위에 올랐다. 김주원은 어머니의 고향인 명주[현 강원도 강릉시]로 퇴거하였고, 원성왕김주원을 회유할 목적으로 명주를 식읍으로 하사하고 명주 군왕(溟洲郡王)으로 봉하였다. 이후 신라의 왕권은 극히 약화되었고, 헌덕왕은 실정(失政)을 거듭하는 등 혼란이 극심하였다. 또한 무열계 진골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김주원의 아들이었던 웅천주 도독 김헌창(金憲昌)은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 강릉김씨는 문벌 귀족의 반열에 올랐다.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순식을 중심으로 3대에 걸쳐 8명의 시랑 평장사(侍郞平章事)를 배출하여 융성기를 맞이하였다. 김상기(金上琦)·김작여(金綽與)·김우(金祐)·김인존(金仁存)·김영석(金永錫)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강릉김씨는 조선 시대에 들어서 문과 급제자 114명과 영의정 1명을 배출했다. 명종~숙종 대에는 8명의 판서를 배출하였고, 다시 영조~정조 대에 8명의 판서를 배출하였다.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팔판동은 강릉김씨 판서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강릉김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고한 지성과 탁월한 문장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있으며, 유일하게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은 김상철(金尙喆)이다.

강릉김씨의 계파 형성은 복잡하지만, 대부분은 시조인 김주원의 5세손부터 갈라지고 있다. 김주원은 3형제를 두었으나, 맏아들인 김종기는 아들 대에 자손이 없다. 둘째 아들인 김헌창은 반란 사건으로 아들 김범문 이후 자손이 없어서, 셋째 아들인 김신(金身)이 결국 강릉김씨의 근거가 되었다. 판사공 부정파(副正派), 옥가파(玉街派), 평의공파(評議公派), 한림공파(翰林公派) 등이 대표적인 계파이다.

[입향 경위]

강릉김씨 당진 입향조는 김주원의 21세손 김득인이다. 김득인은 조선 태종 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낸 김효렴(金孝廉)의 장남으로 성종 때 공조 판서에 오른 인물이다. 김득인의 묘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 오도의 종중 소유지에 있다. 입향 경위는 유배왔다는 설, 관직에서 사퇴한 뒤 요양하기 위해 낙향하였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김득인의 부인이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에 집성촌을 이룬 신평 이씨(新平李氏)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판서공 이상(李祥)의 딸이란 점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황]

김득인의 6세손인 김응추와 김우추 대에 원당파와 시곡파로 나뉘어 세거지를 이루게 되었다. 이들은 김득인의 호를 따서 설파공파(雪坡公派)라고 한다. 2017년 현재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모두 360호 정도 분포하여 인구는 1,700여 명에 이른다. 대부분 당진시 원당동시곡동을 중심으로 세거지를 이루었으나,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상당수 분가하였다. 현재 원당동[원당골]에 20여 호, 시곡동[감골]에 40여 호가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강릉김씨 설파공파에서는 최근 제각(祭閣)을 두 곳에 마련하였다. 한 곳은 원당파인 김응추를 배향하는 ‘영모재(永慕齋)’로 1997년 7월, 당진시 원당동 원당골에 세웠다. 또 한 곳은 낙향조인 김득인을 비롯하여 8명의 위패를 배향한 ‘설파원(雪坡院)’으로, 2002년 8월에 준공하였으며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 김득인의 묘소 아래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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