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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504
한자 牛頭里務安朴氏世居地
영어공식명칭 Ancestral Village of Muan Bak Clan in Udu-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초기
집필자 김남석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에 있는 무안 박씨 세거지.

[개설]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시조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이며 중시조는 시조의 34세손인 박진승(朴進昇)이다. 박진승은 고려 초기 국자감 제주(國子監祭酒)를 지냈고 나라에 공을 세워 무안군(務安君)이 되었으며 전라남도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았다. 그 후 후손들이 무안을 관향으로 정하고 세거지로 삼았다.

박진승은 신라 54대 임금인 경명왕의 여섯째 아들인 완산 대군(完山大君) 박언화(朴彦華)의 현손(玄孫)이다. 그리고 박진승의 7세손에 이르러 무안박씨는 세록지가(世祿之家)로서 본격적으로 흥성하게 되었다. 이때 3형제가 모두 조정에 출사하여 활약하는데 공부 상서공(工部尙書公) 박문연(朴文衍), 면성군(綿城君) 박문오(朴文晤), 호부 상서공(戶部尙書公) 박문정(朴文正)이 그들이다. 이들이 활약한 시기는 대략 1270년대로 추정되는데, 그 당시는 무신 집권기에서 몽고 간섭기로 접어드는 혼란기였다.

무안박씨는 수많은 파가 있는데 대부분 이들 3형제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 중 공부 상서공 박문연의 후손들은 개성파라고 하여 현재 북한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면성군 박문오의 후손들은 16개 파가 있는데 전국적으로 흩어져 살고 있으며 현재 해남, 진도 등지에 주로 거주한다. 당진의 무안박씨는 호부 상서공 박문정의 후손들이다. 이 때문에 당진의 무안박씨는 ‘상서공파’라고 부른다. 호부 상서공 박문정의 증손자 되는 인물이 바로 당진시 우두동의 입향조인 박지(朴智)다.

[명칭 유래]

무안박씨 상서공파가 세거지를 형성한 곳은 당진시 우두동 2통 ‘어리’ 마을이다. ‘어리(漁里)’의 의미는 ‘물고기를 잡는 마을’이다. 여말 선초의 격변기에 ‘충신 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을 외치면서 개성에서 낙향해 이곳에 들어온 박지가 은둔 생활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또한 세이암(洗耳岩)은 박지가 조선 시대와 관련된 소식이 들리면 귀를 씻어 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는 당진시 우두동 2통 ‘어리’의 맨 끝자락에 있다. ‘독고지(內道谷)’라는 지명의 산 뿌리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이 바위 아래로 역천(驛川)이 흘렀다. 박지는 이곳에 앉아 물고기를 낚으면서 고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현재 세이암은 각종 공사로 훼손되었고, 흔적만 남아 있다.

[형성 및 변천]

입향조인 박지는 중시조 박진승의 10세손이며 시조인 박혁거세의 43세손이 된다. 박지는 5명의 아들을 두었고, 이들에게서 다시 분파가 이루어져 모두 5파가 형성되었다. 1파는 박지의 장남 박장(朴杖)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우두동 2통, 즉 어리를 중심으로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2파는 박지의 2남 박교(朴橋)에서 시작하여 덕산과 당진시 채운동 금곡[운곡] 마을, 연기군 일원 및 당진시 사기소동 등지에 분포되었다. 3파는 박지의 3남 박영(朴楹)의 후손들로 현재 당진시 원당동 ‘정안’과 탑동에 거주하고 있다.

4파는 박지의 4남 박제(朴梯)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우두동 1통에 거주하였다. 마지막으로 5파는 박지의 5남 박정(朴楨)의 후손들인데 당진시 채운동탑동읍내동에 흩어져 살고 있다. 결국 무안박씨 상서공파는 입향조 박지 이래 15~20대를 내려오면서 5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큰 집성촌을 형성하며 계승되었다.

또한 무안박씨 상서공파 인물로는 한성 판윤(漢城判尹)을 지낸 박대현(朴大鉉)이 있고, 독립운동가인 박윤식(朴潤植)[1867~1938]과 박희남(朴熙南)[1914~1995]이 있다. 박윤식은 한말 의병에서 출발하여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항일 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박희남은 1932년 예산 농업 학교 독서회 사건, 윤봉길 의사가 조직한 월진회 활동, 예산 학생 동맹 활동 등을 통하여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박희남은 1995년 정부로부터 건국 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그 외에도 박기정(朴基鼎)[1792~1830]의 부인인 열녀 광산 김씨는 그 덕행이 뛰어나 정려(旌閭)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 산45-1에 세워져 있다.

[자연환경]

당진시 우두동 2통 어리 마을은 해방 직후까지 개펄이 많았다. 하지만 점차 간척 사업이 이루어져 평야 지대로 바뀌어 갔다. 해안은 어리에서 멀어졌고, 세이암 아래에 있던 역천(驛川)에만 바닷물이 들어왔다. 밀물 때는 바닷물이 역천 깊숙이 들어왔고 썰물 때는 바닷물이 빠져나갔다. 그 후 1991년 11월 13일 석문 방조제가 완공된 뒤에는 바닷물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현황]

무안박씨 상서공파가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곳은 당진시 우두동 2통 ‘어리’ 마을이다. 이곳은 박지의 첫째 아들인 박장의 후손들이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집이 무안박씨였는데 지금은 총 88호 정도에 65호가 박씨이다. 박지의 셋째 아들 박영의 후손들은 현재 당진시 원당동 ‘정안’과 탑동에 거주하고 있는데 약 45호 정도가 남아 있다. 현재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를 제외하고, 전체 80여 호의 원주민 중 절반 정도가 무안박씨였다. 그 외의 후손들은 당진 시내를 중심으로 흩어져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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