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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호씨 효녀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518
한자 新平扈氏孝女門
영어공식명칭 Memorial Gate for the Filial Piety of Sinpyeong Hos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대덕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학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37년연표보기 - 신평호씨 효녀문 건립
현 소재지 신평호씨 효녀문 - 충청남도 당진시 대덕동 지도보기
원소재지 신평호씨 효녀문 - 충청남도 당진시 대덕동
성격 효녀문
양식 맞배지붕 도리식 건물
정면 칸수 1간
측면 칸수 1간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대덕동에 있는 신평호씨 효녀문.

[개설]

신평호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여 주변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신평호씨는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에 돌아온 후에도 아버지 공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하지만 몸이 쇠약했던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신평호씨는 급한 김에 양 손가락을 찢어 아버지에게 피를 먹였고, 그 다음엔 허벅다리를 베어 그 피를 먹여 열흘간이나 더 살게 하였다. 아버지가 죽자 신평호씨는 장례를 극진히 치르고 3년상이 끝날 때까지 애통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 잣나무에 뿌렸다고 하는데, 그 나무는 뒤에 말라 죽었으며 꿇어 앉았던 자리의 돌은 닳아 없어졌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호씨의 효행을 기려 생전에 정문을 세우라는 명을 내렸고 겸하여 숙부인의 자첩과 정려를 하사하였고 한다.

[위치]

신평호씨 효녀문충청남도 당진시 당진2동 대덕리1구 도로변에 있다.

[변천]

한식 맞배집으로 지어진 신평호씨 효녀문 정문에는 '효녀 숙부인 신평호씨지문(孝女淑夫人新平扈氏之門)'이라 씌어 있다. 현판 내용과 정려기를 보면 정려를 받은 것은 1637년(인조 15)이고 정려기를 찬한 것은 1882년이다.

[형태]

신평호씨 효녀문은 장방형의 시멘트 기단 위에 정면과 측면 각 1칸의 맞배지붕 도리식 건물로, 양 측면에 방풍판을 설치했다. 8각의 높은 주춧돌 위에 4각 기둥을 세우고 사면에 홍살을 둘렀다. 정려각의 내부 중앙에 현판이 걸렸고 그 뒤에 정려기가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신평호씨 효녀문은 당진 지역에 있는 여러 효자문 중에 효녀문으로는 매우 귀한 정려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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