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521
한자 朴希蘭朴希荃旌閭
영어공식명칭 Bound by Chastity Rule of Bak Heeran, Bak Heejun
이칭/별칭 박희란·박희전 효자문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학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21년연표보기 - 박희란·박희전 정려 건립
현 소재지 박희란·박희전 정려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박희란·박희전 정려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성격 효자문
양식 화강석재 건물에 우진각 지붕 형식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희란·박희전의 효자 정려.

[개설]

박희란박희전 형제는 조선 후기 사람이다. 대대로 효행으로 이름난 가문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행동을 통하여 효행을 몸에 익혔다. 형제는 관직에 올라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도 효를 으뜸으로 여기면서 나랏일을 보아 칭찬이 자자하였다. 박희란은 정4품, 박희전은 정2품 벼슬을 지냈다. 『면양읍지』에 따르면, 박희란은 부모를 극진한 효성으로 섬겼는데 부모가 병이 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게 하였고, 1637년(인조 5) 수영의 영리로 강화도에서 전사하였다. 박희전에 대해서는 부모가 병들었을 때 형 박희란과 함께 손가락을 끊어 부모에게 피를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변천]

1721년(경종 1) 6월에 조정에서 박희란·박희전 형제에게 정려를 내리고 돌문을 세웠다고 『면양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형태]

특이하게 건물을 세우지 않고 화강석재로 건물 모형을 만들어 세웠다. 화강석재로 만든 기단위에 상단부와 하단부는 4각으로 깎고 중앙부분은 8각으로 깍은 돌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우진각 지붕 형식의 옥개석을 올렸다. 지붕돌 아래에는 현판대용으로 면석을 붙였다.

[의의와 평가]

박희란·박희전 효자 정려는 특이하게 건물이 없는 양식으로 세워져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더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