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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521
한자 -運動
영어공식명칭 V Narod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2년 7월연표보기 - 충청남도 당진군 고대면 브나로드 운동 시작
종결 시기/일시 1932년 7월연표보기 - 충청남도 당진군 고대면 브나로드 운동 종결
발생|시작 장소 브나로드 운동 -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종결 장소 브나로드 운동 -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성격 계몽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동아 일보사가 주도하고 학생들이 실시한 당진 지역의 계몽 운동.

[개설]

동아 일보사는 '민중 속으로 가자.'라는 뜻의 러시아어인 ‘브나로드(v narod)’를 내걸고 1931년부터 1934년까지 전국적 규모의 문맹 퇴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운동의 주체인 학생들은 하기 방학을 활용하여 당진 지역으로 귀향하였고, 자택과 공회당을 활용하여 문맹인 주민들에게 한글과 숫자를 가르쳤다.

[역사적 배경]

1919년 3·1 운동 이후 조선 총독부는 통치 방식을 이른바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전환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한민족을 회유하기 위하여 보통 교육을 확대하고 한글에 대한 억압을 완화하였다. 1921년 한글학자들은 조선어 학회를 조직하고 한글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지식인과 학생들은 이에 동참하여 한글을 주민들에게 보급하여, 문맹을 퇴치하는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들은 아울러 농촌 계발을 위한 계몽 활동도 추진하였다.

[경과]

동아 일보사는 1931년부터 1934년까지 4회에 걸쳐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하였다. ‘브나로드(v narod)’는 ‘민중 속으로 가자’라는 의미의 러시아 말이다. 제정 러시아 말기의 지식인들이 민중을 깨우쳐 이상 사회를 건설하자는 취지에서 외친 말이다. 1874년 러시아 청년 학생들은 이 구호를 앞세우고 농촌으로 들어가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강점기 계몽 운동은 1920년대 초부터 서울의 학생과 지식인 청년, 문화 단체와 유학생들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특히 조선 총독부에 의해 억압받던 한글[조선어]이 1920년대 보통 학교 필수 교과로 인정되면서 한글 보급에 대한 필요성도 절실해졌다. 동아 일보사는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 편승하여 문자 보급 겸 농촌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주체는 각급 학생들로 구성하였고, 이들은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농촌으로 귀향하여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인 것이다.

당진에서의 ‘브나로드 운동’도 『동아 일보』에서 살펴 볼 수 있다. 1932년 7월 31일자 기사에는 하헌우(河憲祐)가 책임 대원으로 당진군 고대면에서 운동을 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고대 경찰 주재소 소장이 찾아와서 허가가 없으면 시행할 수 없다며 철수를 요구하였다. 교과서를 이용하여 조직적으로 한글과 숫자를 가르치는 것은 강습소의 업무로, 브나로드 운동은 4주 정도 이전에 미리 허가 수속을 거쳐야 가능한 일이라고 한 것이다. 이 기사에는 불과 3주일의 방학 기간 중에 이루어지는 브나로드 운동이 4주간이나 요구되는 사전 허가를 얻어야 가능한 것이냐는 항의가 표현되어 있다.

[결과]

『동아 일보』의 브나로드 운동은 1934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농촌 계몽 운동은 지속적으로 전개·확산되었다. 『동아 일보』 1937년 11월 1일자 기사에 의하면 당시 당진군 송악면 오곡리의 안병걸, 안종갑, 동면 부곡리 심재영 등이 문맹 퇴치를 위해 야학을 하고, 농사 개량과 미풍양속을 확대시키기 위해 7-8년간 노력해왔다고 전한다. 심재영은 심훈의 농촌 계몽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의 실제 인물이다. 당진 지역 브나로드 운동의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심훈의 『상록수』가 당진 지역의 농촌 계몽 운동을 바탕으로 쓰인 점을 고려할 때 많은 성과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의의와 평가]

브나로드 운동은 청년 학생들의 농촌 계몽 운동으로, 전통적인 미작 지대인 당진 지역 농민을 위한 계몽 운동으로서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 소작 쟁의를 비롯한 농민 운동의 활동 거점지가 당진 지역이었기에 브나로드 운동은 농민의 의식 개발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특히 심훈『상록수』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심재영의 농촌 계몽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브나로드 운동은 당진 농민에게 더욱 뜻 깊은 민족 운동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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