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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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仁煥孝子門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Monument House for the Filial Piety of Mun Inhwan |
이칭/별칭 | 문인환 효자 정려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학로 |
건립 시기/일시 | 1863년 - 문인환 효자문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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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1년 - 문인환 효자문 보수 |
현 소재지 | 문인환 효자문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산성리 |
원소재지 | 문인환 효자문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산성리 |
성격 | 효자 정려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간 |
측면 칸수 | 1간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산성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문인환의 효자 정려.
[개설]
문인환(文仁煥)[1846~1886]은 문익점의 후손으로, 1846년 2월 12일 문영휘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인환은 태어난 지 몇 해 안 되어 큰집인 정미면 산성리에 사는 문영철의 양자로 들어갔다. 여덟 살이 된 어느 날 갑자기 양아버지 문영철이 큰병이 들자 문인환은 지극한 병간호로 낫게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을 사람들은 어린 문인환의 효성을 크게 칭찬하였다. 그러나 4년 뒤 문인환이 열두 살 되던 해에 양아버지가 사망하였다. 문인환은 어린 나이임에도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3년간을 밤낮으로 곡을 하며 시묘하였다.
[위치]
문인환 효자문은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희천 고개에 있다.
[변천]
1863년 문인환이 열여덟 살 되던 해에 지방 유림이 주선하여 정미면 산성리에 비각을 세우고 문인환의 효성을 모든 사람이 본받도록 하였다. 1981년에 후손들이 비각을 다시 보수하고 그 옆에 비석을 세웠다. 비석은 문원모가 글을 짓고 문주현이 글씨를 썼다.
[형태]
효자문은 시멘트 벽돌로 담을 쌓았으며, 장대석과 자연석으로 3단의 계단을 만들고 잔디를 깔았다. 건물은 밑이 넓고 위는 좁은 4각 높은 주춧돌 위에 둥근기둥을 세웠다. 창방 위에 소로를 3개 놓고 그 위에 망새[전통 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얹는 장식 기와]를 한 개씩 올렸다. 정면과 측면 각 1간씩의 건물로, 맞배지붕에 겹처마를 한 이익공 형식이다. 3면은 회벽으로 바르고 반담을 쌓았으며, 정면은 하방 아래는 시멘트로 고막이를 하고 중앙에 네모반듯한 문을 만들고 위에 홍살을 설치하였다.
[의의와 평가]
문인환 효자문은 정미면의 대표적인 효자문으로, 향촌 사회에서 "효"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