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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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秉舜 |
영어공식명칭 | Yi Byeongsun |
이칭/별칭 | 범일(凡一)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남석 |
출생 시기/일시 | 1920년 - 이병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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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57년 - 이병순 당진군 4-H 연합회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962년 - 이병순 충청남도 농촌 진흥원 표창장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63년 - 이병순 한국 농민 자주 총연맹 중앙 위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63년 - 이병순 산업 훈장 농림부 장관 표창장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64년 - 이병순 충청남도 4-H 지도 위원회 제4대 부위원장 피선 |
활동 시기/일시 | 1965년 - 이병순 충청남도 4-H 지도 위원회 제5대 부위원장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65년 - 이병순 중앙 농촌 진흥회 지도 위원 선임 |
몰년 시기/일시 | 2007년 - 이병순 사망 |
출생지 | 이병순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봉생리 |
거주|이주지 | 이병순 거주시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봉생리 |
학교|수학지 | 서산 농업 전수 학교 - 충청남도 서산시 |
묘소 | 이병순 묘소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봉생리 |
성격 | 농촌 운동가 |
성별 | 남 |
본관 | 신평(新平) |
대표 경력 | 충청남도 4-H 지도 위원회 부위원장 |
[정의]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농촌 운동가.
[개설]
이병순(李秉舜)[1920~2007]은 서산 농업 전수 학교를 졸업한 후 지속적으로 농촌 지도자 육성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평생을 농촌 계몽과 4-H 운동에 헌신한 농촌 운동가이다.
[가계]
이병순의 본관은 신평(新平), 호는 범일(凡一)이다. 아버지는 이운영(李雲永), 어머니는 최씨이다.
[활동 사항]
이병순은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봉생리 375번지에서 태어나 정미 공립 보통학교[현 정미 초등학교]를 마치고 2년제인 서산 농업 전수 학교를 졸업하였다. 이병순은 학업을 지속하면서 일제 강점기 피폐해진 농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47년 농민 운동가들이 설립해 운영하던 중앙 농민 대학숙을 수료하였다. 또한 부산에 설립된 농민 대학 과정을 이수하였다. 당시는 대한 농민 총연맹과 대한 농회가 통합하여 대한 농민회가 결성되는 등 농민 운동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이병순은 농민 단체에 가담하여 농촌 발전의 선도적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새로운 농촌 재건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병순은 1957년 당진군의 4-H 연합회를 조직하였고, 1958년에는 4-H 지도 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1963년 한국 농민 자주 총연맹이 결성되면서 중앙 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64년 충청남도 4-H 지도 위원회 제4대 부위원장, 1965년 제5대 부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또한 같은 해 중앙 농촌 진흥회의 지도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중앙 농촌 진흥회는 농촌 근대화를 위한 범농촌 진흥 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로 전국 농촌 자원 지도자의 모체였다.
이병순은 어린 시절 공무원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많았지만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농촌 계몽과 발전을 위한 4-H 운동에 주력하였다. ‘범일(凡一)’이라는 호도 충남 농우회 회원들이 백범 김구를 생각하면서 농촌 지도가의 한길만을 걸어가라고 지어 준 것이라고 한다. 이병순은 검은 두루마기 한복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자전거를 타고 당진 지역 농촌 마을을 누비며 농촌 계몽에 전력을 다하여 ‘농촌의 검은 두루마기’라고 불렸다.
[묘소]
이병순의 묘소는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봉생리 ‘마명동’ 마을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병순은 1962년 충남 농촌 자원 지도자 훈련원에서 4년간 활동한 공로로 농촌 진흥원 표창장을 받았다. 1963년 광복절 기념식에서는 산업 훈장, 농림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