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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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於靑島 |
이칭/별칭 | 늘푸른도,금비라섬,곤피라섬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유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4년 - 어청도 전라북도 옥구군 편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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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6년 - 어청도 전라북도 군산시 편입 |
해당 지역 소재지 | 어청도 -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동경 126°17′, 북위 26°02′] |
성격 | 섬 |
면적 | 1.8㎢ |
둘레 | 10.8㎞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에 속한 섬
[개설]
전라북도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고군산 군도의 한 섬으로, 군산항에서 66㎞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전체 면적은 1.8㎢이며, 해안선 길이는 10.8㎞이다.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섬의 당집인 치동묘 전설에 의하면 백제 시대에 이미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보이며, 조선 시대에는 주로 귀향지로 이용되어 현재까지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어청도는 조선 말엽에는 충청남도 보령군 오천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일제 장점기에 있었던 행정 구역 개편 때 옥구군에 편입되었고, 1986년 군산시로 편입되었다.
서해 항로의 요충지로 1885년경부터 일본인 잠수부들이 기항하였으며, 1908년에는 40여 호, 170여 명의 일본인이 거주한 흔적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당시 일본인들은 어청도를 자신들이 신봉하는 바다의 신이자 해상 정복의 신인 용을 뜻하는 금비라섬, 또는 곤피라섬이라고 불렀다.
[명칭 유래]
어청도는 물 맑기가 거울과도 같아 어청도라 부른다. 어청도 치동묘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202년경 한나라 고조가 초나라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고 항우가 자결하자 재상 전횡이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망명길에 올랐다. 돛단배를 이용하여 서해를 목적지 없이 떠다니던 중 중국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어청도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날은 쾌청한 날씨였으나 바다 위에 안개가 끼어 있었는데, 갑자기 푸른 산 하나가 우뚝 나타나 전횡은 이곳에 배를 멈추도록 명령하고, 푸른 청(靑) 자를 써서 어청도(於靑島)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자연 환경]
섬의 형태는 서쪽으로 트인 ㄷ 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북서 계절풍에 의한 침식으로 섬의 북서쪽에는 높은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섬의 대부분이 100m 내외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경지가 적으나 삼림이 울창하고 식수가 풍부하다. 수심 20m 미만의 넓은 만이 있어 어항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1월 평균 기온 -0.8℃ 내외, 8월 평균 기온 25.7℃ 내외, 연강수량은 1,190㎜ 정도이다.
[현황]
어청도는 2001년 현재 인구 428명의 주민이 거주 중이다. 취락은 동남쪽 어청 마을에 분포하며, 주민의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다. 연근해에서는 멸치·우럭·놀래기·해삼·전복 등이 잡히고, 농산물로는 마늘·채소 등이 생산된다.
어청도는 한때 포경선이 가득한 섬이었다. 동해에서 사는 고래가 봄에 새끼를 낳기 위해 어청도 근해로 오면 포경선도 따라 이동해 왔다고 한다. 1960~1970년대에는 포경선이 정박하여 고래의 해체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나, 포경 사업의 금지로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인구도 줄어들었다.
주봉인 당산[198m] 위에는 어청도 봉수대가 있다. 어청도 등대는 일제 강점기인 1912년에 세워졌으며, 등대로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문화 유산이다. 전하는 민요로는 희롱요, 모심기 노래, 방구 타령이 등이 있으며, 군산시 향토 문화 유산 제14호로 지정된 치동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