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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324
한자 陵-
영어공식명칭 Neungan
이칭/별칭 능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도문리 산78-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추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비정 지역 능안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도문리 산 78-1 지도보기
성격 자연 마을
관련 문헌 『송산면지』|『당진의 지명 유래』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도문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중종 때 좌의정 용재(容齋) 이행(李荇)과 전 홍주 목사 이의무(李宜茂) 부자의 능묘가 있는 곳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능안 마을이라 한다. 한자 표기로는 능내(陵內)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한양이나 개성을 중심으로 왕릉이 많아서 촌락 지명에 ‘능(陵)’ 자가 들어간 곳이 많다. 왕릉이 아니어도 좌의정, 영의정 등의 높은 벼슬을 역임하면 신도비를 묘소 앞에 세우기에 왕족에게는 못 미치지만 보통 양민의 묘소와는 문무관석, 신도비 때문에 무덤의 규모나 형상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커서, 대개 시골에서는 이것도 ‘능(陵)’이라 불렸다. 따라서 꼭 왕족이 아니어도 이런 ‘능’ 자가 붙은 촌락 지명은 전국에 많다.

[형성 및 변천]

전 홍주 목사 이의무는 1487년에 전적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편찬 등에 참여했으며, 시문에도 능해서 『연헌잡고(蓮軒囃稿)』 등의 저서가 있다. 능안에 있는 이의무 신도비의 용두는 정교하기 그지없어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용재 이행이의무의 셋째 아들로 1478년 5월 22일에 태어나서, 1534년 함종 유배지에서 57세로 세상을 마쳤다. 이행은 1520년에 홍문관·예문관 대제학과 1530년 우의정, 좌의정 등의 높은 벼슬을 지냈다. 이행이 편찬한 유명한 책이 우리나라 관찬 지리서로서 가장 오래된 1530년에 제작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란 책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8도 군현의 지리, 역사, 행정, 경제, 한시 등 다양한 종류의 내용을 기술한 일종의 지지책으로 55권 25책으로 된 방대한 조선 시대 종합 인문 지리서이다. 지금도 많은 학자들이 이 책을 기초 자료로 해서 그 지역 향토의 역사와 지리를 연구하고 있다.

이의무이행 부자의 능묘가 있는 곳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능안 마을이라 한다. 한자 표기로는 능내(陵內)라고 부른다.

[관련 기록]

현재 당진시 정미면 사관리에 묘소가 있는 증손자인 동악(東岳) 이안눌이행『용재집』을 간행했는데, 『용재집』에는 한시의 정수를 보여 주는 「노마(老馬)」, 「등청학동 후령(登靑鶴洞後嶺)」, 「국(菊)」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행의 절친한 친구인 박은도 유명한 한시를 많이 남겼는데 이 두 사람이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다음의 시는 연산군의 폭정에 잘못을 직소하다 26살의 나이로 참수당한 박은이 자기와 친구라는 이유 때문에 유배 길에 오르는 이행을 두고 지은 「북경을 가는 이행을 보내며」라는 한시이다.

"한줌 흙을 쌓아 태산 만들고,/ 한잔 물을 모아 하수를 이루었지/ 큰 물과 높은 산도/ 본래는 작은 것이 쌓인 거라네,/ 천박한 이 몸은 힘 모자라고/ 학문까지도 적어 부끄러워라/ 창해 깊이도 더듬어 보지 못했거니/ 태산 높음을 어찌 알겠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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