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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19
한자 彩雲浦石橋碑
영어공식명칭 Chaeun-ferry Stone Bridge Monument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88년연표보기 - 채운교 부설 기념을 위한 채운포석교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60년대 - 채운포석교비 본래의 위치에서 당진시내인 탑동 사거리의 노인정 고갯마루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17일연표보기 - 채운포석교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17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채운포석교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이전 시기/일시 2007년 - 채운포석교비 이전
현 소재지 채운포석교비 - 충청남도 당진시 채운동 1123 지도보기
원소재지 채운포석교비 - 충청남도 당진시 채운동 채운포지도보기
성격
크기(높이, 너비, 두께) 153㎝[높이]|62㎝[폭]|38㎝[두께]
소유자 당진시
관리자 당진시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채운교 건립 기념비.

[개설]

채운포석교비는 1688년(숙종 14년) 당진의 채운포에 세워진 비석이다. 충청남도 당진시의 중심지에서 서쪽에 있는 당진시 석문면고대면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역천(驛川)이라는 개울을 건너야 한다. 그 포구가 채운포이다. 석교비는 이곳에 돌로 만든 다리가 있었음을 확인해 주는 유물이다.

[건립 경위]

채운포석교비는 1688년(숙종 14)에 세워졌다. 영랑사 승려들이 1688년에 높은 다리를 놓고 ‘채운교’라 명명했으며, 그 일를 기념하기 위하여 채운포석교비를 세웠다고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채운교를 13간 규모의 목교(木橋)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후대에 와서 석교(石橋)로 변경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채운포석교비는 원래 세워진 위치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현재의 채운교[일명 북창교]보다는 훨씬 상류인 옛 채운교 지점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채운포 석교명의 귀부[거북처럼 생긴 비석의 받침돌]가 있었던 위치가 현 채운교 상류의 수백m 지점에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천 가에 있던 귀부는 도난당하고 현재 비신만 남아 있다.

채운포석교비는 본래 위치에서 벗어나 1960년대 당진 시내인 탑동 사거리의 노인정 고갯마루에 옮겨졌다. 하지만 대동 다숲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이곳도 사라지게 되자, 당진시에서는 2007년 아파트 끝자락의 대로변에 터를 마련하고 안내판과 함께 석교비를 세웠다. 현재 당진시 탑동 사거리에서 서북쪽 고대 방면의 615번 대호만로를 따라 약 200m 지점에 있다. 주소는 충청남도 당진시 채운동 1123이다.

[형태]

채운포석교비의 크기는 높이 153㎝, 폭 62㎝, 두께 38㎝이며, 상단부 가운데가 높이 8㎝, 폭 18㎝, 두께 8㎝ 정도로 볼록하게 솟아 있어 이수를 얹은 흔적으로 보인다. 또한 석교비는 비신만 남아 있으나 받침돌인 귀부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교비의 전면에는 '채운포 석교명(彩雲浦石橋銘)'이라 음각(陰刻)되어 있고 대부분의 글자는 마멸되어 알아볼 수 없다. 좌·우·후면에 다수의 인명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석교명 건립 당시 참여한 사람의 성명으로 추정된다.

[금석문]

석교비에 음각된 글씨는 다음과 같다.

〈전면 전각〉

彩雲浦 石橋銘

〈좌측면〉

嘉善宋彦立 通政趙金 金萬一 石生梁貴□ □□□ □□□ □□□

□□□ 比丘日明 □□ □明 □加外 □□□ □□□ □□□

□□□ □□玉 金守奉 姜于音孫 劉成吉 劉戎一 □宣□ □□立

金仁世 □□□ □□□ □□ □□□ □天陽 □□□ □星廳

朴永吉 □□□ 朴□□ □□□ □□□ □□□ □□□ □□□ □□□

□□□ □□□ 李□□ □□□ □□□ □□□

〈우측면〉

石手 比丘宗□ □□□一 都片手治匠刻 手無大施主比 丘善律 李石

見 別□□一 □□比丘學□ 英覺 覺宗 勝安 供養主 己云 太明

好信 □□ 比丘六和 □□ □日 應聖 學海 惠明 □□

[현황]

당진시에서는 아파트 단지의 외곽 도로변에 공원을 조성하여 석교비를 세우고 안내판도 정비하였다. 하지만 표지판이 없어서 외부인이 석교비를 찾고자 할 때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채운교 전설]

옛날 채운이란 마음씨 착한 아가씨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바닷가에서 여관업을 하며 살았다. 채운은 당나라로 떠나는 상인들에게 늘 후하게 대접하였고, 재산이 넉넉해지면서 역천에 다리를 놓아 주민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그 다리를 ‘채운교’라 부르게 되었고, 채운의 선행을 고마워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채운포석교비는 당진 지역 교통 문제와 석재로 건설된 다리의 실체를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다. 특히 채운포석교비가 있던 역천은 최근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이었고, 홍수가 나면 교통이 두절되던 곳이었다. 석교비의 건립 내용과 위치가 고증된다면 당진시내와 당진의 서북부 지역과의 교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석교비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1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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