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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유장군유물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30
한자 李萬維將軍遺品
영어공식명칭 Yi Manyu General Keepsake
이칭/별칭 이만유장군유품,한원사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독암길 7[거산리 51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학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8년 12월 30일연표보기 - 이만유장군유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이만유장군유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현 소장처 한원사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독암길 7[거산리 510]지도보기
원소재지 한원사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독암길 7[거산리 510]
성격 유물|유품
재질 장검 칼집은 나무|고리 끝에 금속 장식|활통은 동(銅)
크기(높이,길이,너비) 길이 129.5㎝[장검]|길이 98㎝, 둘레 25㎝[활통]
소유자 이웅섭
관리자 이웅섭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 한원사에 보관된 조선 후기의 무신 이만유가 남긴 유물.

[개설]

이만유(李萬維)[1684~1750]는 조선 숙종·영조 때 인물로 1719년(숙종 45)에 무과에 급제해 도문무사 자헌 지중추부사, 양성, 낙안 등 현감, 경상도 좌수사, 의주 부윤, 형조판서를 역임했다. 고려 후기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15대 손으로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숙함(叔咸)이며, 호는 사상당(四尙堂)이다. 특히 안성에서 거병하여 삼남 지방에서 호응했던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여 진무공신(振武功臣) 한원군에 봉해졌다. 1750년(영조 26)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난 후 오위도총관을 증직받았다. 사당인 한원사(韓原祠)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목조 맞배지붕의 건축물로 1899년(광무 3년)에 지어졌다.

[형태]

이만유 장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길이 129.5㎝, 무게 2㎏인 장검 1점, 길이 98㎝, 둘레 25㎝인 활통 1점, 교지(敎旨) 1지, 영정첩 및 영정 3점, 기타 3점 등 모두 9점이 전해진다. 장검은 손잡이 끝에 무늬가 있고 칼집은 나무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 고리가 달려 있고 끝에 금속 장식이 붙어 있다. 하지만 일부분이 파손된 상태다. 활통은 동(銅)으로 만든 6각형의 형태로 끝 부분에는 장식이 있고 뚜껑 부분에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영정은 사모와 관복 차림의 초상화이다.

[특징]

현재 이만유 장군의 자손인 이웅섭이 장군의 유물 중 장검, 활통, 교지 1건, 영정첩 및 영정 3점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만유장군유물 은 다양한 영정과 유품이 보전되고 있다는 점과 1978년 12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어 보존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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