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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957
한자 唐津聖堂
영어공식명칭 Dangjin Catholic Church
이칭/별칭 천주교 당진성당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서문2길 28[읍내동 507-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9년 4월 30일연표보기 - 당진성당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7년 - 당진성당, 새 성당에서 첫 미사 봉헌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8년 4월 30일 - 당진성당 봉헌식 거행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5년 3월 7일 - 당진성당 두 번째 성당 기공식 거행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6년 11월 19일 - 당진성당 천주교 대전 교구장 주교와 함께 봉헌식 거행
최초 설립지 당진성당 - 충청남도 당진시 서문2길 28[읍내동 507-2]
현 소재지 당진성당 - 충청남도 당진시 서문2길 28[읍내동 507-2]지도보기
성격 성당
설립자 프로망투 신부
전화 041-356-1555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개설]

충남 당진시 읍내동에 위치한 천주교 성당으로 1939년에 설립되었다. 당진 지역에 인구가 급증하고 신자도 늘어나자 2003년에 기지시 성당, 그리고 2011년에 당진 수청 성당을 분가해 주었다. 2016년에 새 성당을 지어 봉헌하였다.

[설립 목적]

당진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성숙과 선교를 통한 지역 복음화를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천주교 당진성당은 1939년 합덕 성당에서 분가하여 당진 읍내에 설립된 성당이다. 당진에 새로운 성당을 설립하는 방안은 1930년대 중반부터 구상되었다. 당진의 모(母) 성당인 합덕 성당은 1927년에 예산 성당을 분가해 주었음에도 교세가 빠르게 증가하자 새로운 성당을 분가할 필요성을 느꼈다. 당진이 새 성당의 입지로 선택된 이유는 군청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인근의 군청 소재지인 서산과 예산에는 오래전에 읍내에 성당이 자리하였으나 당진은 그렇지 못한 상태였다.

합덕 성당은 1938년부터 새 성당 분가를 준비하였다. 현재의 당진성당 자리[당진시 서문2길 28]에는 당진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1938년 4월에 다른 곳으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초등학교의 교사로 쓰이던 2칸짜리 건물은 성당으로 쓸 수 있었고, 당진 읍내가 한 눈에 보이는 곳이어서 성당을 세우기에 적합하였다.

당진성당 설립일은 1939년 4월 30일로 초대 주임 신부가 임명된 날이다. 성당 설립 초기의 관할 구역은 당진읍, 석문면, 고대면, 송산면, 송악면 일부, 순성면 일부, 면천면 일부, 그리고 서산시의 운산면도 포함되었다. 이것은 1957년 행정 개편이 이루어지고 그해 11월 당진성당과 서산 성당 간의 관할 구역이 조정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설립 초기의 형편으로는 성당을 지을 만한 여건이 아니어서 초등학교로 쓰이던 2칸짜리 건물의 내부를 개조하여 사용하였다.1964년 당진 성당의 신자는 총 2,615명에 달하여 초등학교 교사를 개축하여 만든 옛 기와집 성당은 많은 신자들을 감당하기에 너무 협소하였다. 이 때문에 1960년대 초부터 새 교회 건립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으나 내외의 여건으로 인해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1965년 6월에 당진성당에 새 신부가 부임하면서 7월부터 새 교회 건립을 위한 모금이 본격화되었다. 공사는 1967년 6월부터 시작되었다. 총 공사비 640만 원이 소요된 새 성당은 그해 완공되어 12월 10일에 첫 미사를 봉헌하였고, 이듬해 4월 30일에 천주교 교구장 주교와 함께 봉헌식을 가졌다.

2015년 들어 당진성당은 또 한 차례 성당을 건축하였다. 50년 전에 지은 성당이 낡아 안전상의 문제가 대두되고, 늘어나는 신자에 비해 성당이 협소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성당을 허물고 2015년 3월 7일에 두 번째 성당 건립을 위한 기공식을 가졌다. 9개월의 공사 끝에 같은 해 12월 24일 새 성당에 첫 미사를 봉헌하였고, 이듬해 2016년 11월 19일에 천주교 대전 교구장 주교와 함께 봉헌식을 가졌다.

[당진성당의 분가]

1979년 삽교천 방조제가 완공되어 교통의 흐름이 바뀌고, 점차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당진 지역에 인구가 늘어나자 당진성당의 신자들도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2000년대에 이르러 당진성당 신자가 4천 명을 넘자 분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이에 2003년 기지시 성당을 분가하여 기지시, 송산, 방계, 부곡, 복운, 당산 지역을 관할하도록 했다. 분가 후 당진성당 신자는 3,594명이었고, 기지시 성당은 754명이었다.

2009년은 당진성당은 설립 70주년을 맞아 경축 행사를 가졌다. 성당 사목회의 상임 위원들은 그해 2월 14~15일 솔뫼 성지 피정의 집에 모여 경축의 해를 맞을 준비를 논의하고 1년 동안 실행하였다. 큰 축제를 준비하며 모토가 될 성경 구절을 공모하였는데,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1코린 15,10]가 선정되었다. 이런 정신을 가지고 진행한 성과들은 크게 영성·기도 부분, 봉헌·행사 부분, 시설·여건 확충 부분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70주년 기념 역사 편찬도 이루어져 『천주교 당진본당사』가 발간되었다.

2011년 들어 당진성당수청동에 또 하나의 성당을 분가해 주었다. 신설된 수청 성당의 신자 수는 1,154명이었고, 관할 구역은 당진읍 수청리, 읍내리 일부, 수청동, 원당리 일부, 시곡리, 대덕1리, 순성면 갈산리, 성북리, 송산면 금암리였다. 분가 후 당진성당읍내동 전체와 원당동 일부를 관할하고 있으며, 2012년 기준으로 신자 수는 4,198명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당진성당은 일제 강점기 말에 설립되어 태평양 전쟁, 해방 후의 혼란, 한국 전쟁으로 이어지는 어려운 시간을 거치면서도 크게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신자들에 대한 사목 활동 외에도 보육원, 학교와 유치원, 병원을 설립하여 지역 사회에 봉사하였다.

1952년 4월 3일에 당진성당 구내에 설립된 소화 보육원의 처음 명칭은 합덕 육아원 분원(合德育兒院分院)이었다. 인근 합덕 성당에서 오래전부터 운영되던 고아원은 한국 전쟁으로 급격히 늘어난 아이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당진성당에 분원을 내었다. 당시 보육원 앞에 몰래 버려지는 아이들도 있었고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오는 아이들이 많아 1953년 소화 보육원에는 48명의 원아들이 있었다.

현재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대철 중학교는 천주교 대전 교구에서 설립한 학교이다. 대철 중학교 설립은 당진성당 소화 보육원과 관련을 맺고 있다. 보육원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학업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운산의 고등 국민학교를 천주교에서 인수하도록 제안이 들어왔고, 대전 교구에서 이를 받아들여 1958년 3월 6일에 대철 중학교를 설립하였다. 대철 중학교에 입학한 소화 보육원 아이들은 학교 근처에 따로 마련된 집에서 수녀와 함께 기거하며 공부하였다. 대철 중학교와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또 하나의 교육 기관이 소화 유치원이다. 소화 유치원은 1956년 8월 14일에 인가를 받아 당진성당 구내에 개원하여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당진성당 바로 아래에 자리한 당진 성모 병원 역시 성당과의 관계 안에서 설립되었다. 성모 병원의 처음 이름은 ‘소화 의원’이었는데 1953년 10월 15일에 지역 주민들에게 의료 혜택을 주기 위해 대전 교구의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성모 병원은 1975년 완전히 독립할 때까지 당진성당 주임 신부가 병원장을 겸임하면서 운영되었다. 당진성당한국 전쟁이 끝난 이후 해외의 원조를 받아 활발한 교육, 의료, 복지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2년 4월 3일에 고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성당 구내에 소화 보육원을 설립하였고, 1953년 10월 15일에 당진 성모 병원 설립하여 당시로서는 낙후된 농촌이었던 당진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1956년 8월 14일에 소화 유치원 설립하고, 1958년 3월 6일에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대철 중학교 설립하여 교육 활동도 전개하였다.

[현황]

1939년 설립된 당진성당은 2003년에 기지시 성당, 2011년에 수청 성당을 분가해 주었다. 2015년 현재 당진성당읍내동 전체와 원당동 일부를 관할하고 있으며 신자 수는 4,198명이다. 당진성당은 천주교 대전 교구 당진 지구의 지구장 성당으로서 당진 지역 천주 교회의 대표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당진성당 구내에는 1968년에 완공하여 봉헌식을 가진 옛 성당이 있었다. 2015년 안전상의 이유로 성당을 철거하고 새 성당을 지어 2016년 11월 19일에 봉헌식을 가졌다. 같은 시기에 사제관과 수녀원도 2층으로 건축하여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새 성당 동쪽에는 2002년 완공한 대건관이 있어 신자들의 모임과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같은 건물 안에 1956년 설립된 소화 유치원이 운영되고 있다. 성당 남쪽에 위치한 성심관은 주방 시설이 갖춰져 있어 행사와 모임을 가질 수 있다. 한편 성당 구내에는 1982년 당진시 보호수로 지정된 800년된 은행나무와 150년 된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이곳이 당진의 옛 관청이 있던 역사적 장소임을 말해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당진성당은 신자들의 신앙 성숙은 물론 여러 측면에서 지역 사회에 영향을 주었다. 성모 병원을 설립하여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였으며, 한국 전쟁 후 소아 보육원을 설립하여 고아들을 양육하는 데도 힘을 썼다. 또한 대철 중학교와 소화 유치원을 설립하여 교육 활동에도 참여하여 당진 지역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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