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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당간 지주' 서해대교, 서해대교 위의 '쉼표' 행담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430
한자 西海岸-幢竿支柱西海大橋西海大橋-行淡島
영어공식명칭 Seohae Grand Bridge and Haengdamdo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서해안 고속 도로 275[매산리 49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자경

[정의]

서해안 고속 도로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복운리에서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내기리 구간을 연결하는 해상 대교인 서해대교서해대교가 지나가는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에 있는 섬.

[개설]

서해대교는 고속 국도 제15호선 서해안 고속 도로의 당진~평택 구간을 잇고 있다. 한반도를 종단하고 있는 경부 고속 도로나 중부 고속 도로에 비해 서해안 고속 도로 건설 시기가 늦은 것은, 그만큼 국토의 개발이 내륙 권역이나 동남 해안 권역에 편중되었음을 보여 준다.

서해안 지역[충청남도, 전라남북도]의 개발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발맞춰 물류의 이동이 고민되었고, 따라서 서해안 권역을 관통하는 고속 도로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1990년대부터 수도권 개발의 제한과 대중국 교류의 움직임에 따라 서해안 권역의 산업 기반 투자는 예상된 일이었다. 특히 충청남도 당진시는 이미 해안 지대를 중심으로 철강 산업 단지와 발전소를 갖추고 있어 환황해권 개발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더불어 석문 국가 산업 단지가 조성되면서 물류 이동의 통로는 더욱 강한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충청남도에서 수도권까지 최단 거리 연결이 필요했고,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경기도 평택시까지 바닷길을 연결하는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서해대교는 그렇게 탄생하게 된다.

[첨단 건설의 경연장-서해대교]

서해대교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복운리에서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내기리까지 연결된 해상 대교이다. 한국 도로 공사가 서해안권 교통망과 물류 기반 확충을 위하여 1993년 11월에 착공하여 2000년 11월에 완공하였다. 총연장 340.8㎞인 서해안 고속 도로에는 827개의 교량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긴 서해대교는 총 길이 7,310m, 도로 폭은 31.4m인 왕복 6차선 사장교(斜張橋)이다. 길이를 비교하자면 한강에 놓여 있는 다리 일곱 개를 일렬로 나열한 길이다. 서해대교는 총사업비 6,777억 원, 연인원 220만 명과 장비 45만 대, 철근 12만 톤, 철강재 2만 톤, 시멘트 32만 톤 등이 동원된 초대형 교량이다. 풍속 65m/sec의 강풍에 견딜 수 있으며 리히터 규모 6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해수로 인한 부식에 대비하여 내염 시멘트 및 에폭시 코팅 철근을 사용하였고, 각종 첨단 계측기를 설치하여 과학적인 시공 및 유지 관리를 하고 있다.

교량 형식은 주탑을 중심으로 세워지는 사장교[Cable-stayed Bridge]와 미리 만들어진 콘크리트 상판을 차례로 얹어 잇는 P.S.M.교[Precast Segment Method Bridge, 연속 콘크리트 상자형교], F.C.M.교[Free Cantilever Method Bridge, 장경간 콘크리트 상자형교] 등 3개의 건설 공법이 혼합되어 있다. 다리의 총길이 중 사장교는 990m이고, P.S.M.교 5,820m, F.C.M.교 500m이다.

서해대교의 중앙 사장교에는 높이 180m, 182m의 서로 다른 주탑이 남북으로 마주보며 서로를 향해 144개의 케이블을 늘어뜨리고 있다. 케이블의 지름은 18~28㎝, 길이는 55~230m이다. 케이블 한 개는 37~91가닥의 강연선(strand)[지름 15.7㎜]이 한 다발로 묶인 형태이다. 또한 케이블 하나가 받는 힘은 360~850톤 정도라고 한다. 서해대교는 주탑과 주형을 케이블로 경사지게 연결한 사장교로, 항로 확보가 필요한 곳에 주로 건설되며 케이블로 되어 있어 일반 현수교에 비해 장력 조정이나 교체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사장교는 차량이 지나가는 상판[deck], 상판을 들어 매는 케이블, 케이블을 지지하는 주탑[pylon]으로 구성된다. 주탑을 중심으로 경사지게 매달려 있는 케이블이 다리를 견고하게 지탱한다. 즉 차량의 무게는 상판에 작용하고 이는 케이블을 통해 주탑으로 전달된다. 주탑에 전달된 하중은 다시 기초[footing]를 통해 견고한 지반에 안전하게 전달된다. 서해대교 밑으로 5만 톤급의 화물선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주탑과 주탑 사이 거리가 470m나 된다. 세계에서 열여덟 번째 규모다. 그리고 서해대교를 건설에는 주변을 대형 원통으로 둘러싸고 물을 퍼낸 후 교각을 세우는 ‘가물막이’ 공법이 국내 최초로 도입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견고한 해저 암반까지 굴착해 주탑의 기초를 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9.3m의 조수 간만 차와 초속 2.3m에 달하는 빠른 물살 속에서 기초를 만들기 위해 축구장 3배 면적의 물막이를 바다 가운데에 설치했다. 물막이는 내부에 유입되는 물을 뿜어내면서 해수면에서 32m 아래까지 굴착해 커다란 기초[66m×28m×34m]를 마련하기까지 2년의 시간과 레미콘 24,000대 분의 콘크리트가 사용됐다. 특히 주탑의 외형은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에 있는 보물 제537호 ‘아산 읍내동 당간 지주’를 본떠 설계하여 조형미도 뛰어나다. 주탑의 유지 관리를 위해서 점검용 엘리베이터, 곤돌라, 이동식 점검 대차 등 설치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사장교 주탑과 상판 사이에는 충격 전달 장치[LUD, lock up device]가 연결돼 다리의 안전성을 돕는다. 충격 전달 장치는 온도에 따른 상판의 신축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장치다. 지진과 같이 빠른 하중이 작용할 때는 자동으로 잠김 작용을 해 양쪽의 주탑으로 힘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P.S.M.교는 규격화된 세그먼트[교량 상부]를 공장에서 제작하여 완성품을 현장으로 옮겨 조립하므로 경제성과 정확한 시공성 확보[60m 시공 시 12일 소요]는 물론 교량 상부 공사와 하부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여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한 지진 시에 교각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46m 이상 높이의 교각은 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안정성을 더욱 높인 다리이다. 이 다리는 품질 관리가 용이하고 경제성이 뛰어나 서해대교 중 가장 긴 구간인 5,820m 구간에 시공되었다. 높은 교각의 유연성을 이용하여 교각과 상부 구조가 일체식으로 결합된 구조로 지어진 F.C.M.교는 교각의 상단부에 이동식 거푸집을 이용하여 좌우 평형을 유지하면서 약 4m 길이의 상판을 연속적으로 시공하여 상판을 완성시키는 교량 건설 공법이다. 서해대교 500m 구간이 F.C.M.교로 건설되었으며 다리 아래로 2만 톤급의 선박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첨단 건설 기술의 집약체인 서해대교는 어쩌면 또 다른 진보를 위한 발판인지도 모르겠다. 1937년 미국 금문교 건설로 교량 건축 기술의 결정체라 불리던 현수교 기술은 1950년대 사장교 기술을 탄생시켰다. 서해대교에 사용된 각종 첨단 건설 기술이 어느 순간 한층 진보한 교량 건설 기술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

[쉼, 그리고 삶의 여유-행담도]

서해대교를 통해 서울 방향이나 목포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르는 곳이 행담도 휴게소이다. 행담도 휴게소는 덕평 자연 휴게소나 금강 휴게소처럼 양방향 차량들이 한 휴게소를 이용하도록 설계되었다. 행담도서해대교가 그 중앙을 가르고 지나가는 형상이지만 반대로 행담도서해대교를 받쳐 주는 모습이어서 바다를 가르는 거대한 서해대교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에 속해 있는 행담도는 전체 면적이 0.16㎢이다. 당진시의 부속 도서 중 대난지도소난지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1985년 『당진군 통계 연보』에 의하면 행담도에는 16가구 6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행담도 개발 직전인 1999년에는 50여 명의 주민이 거주했으나 서해안 고속 도로 개통으로 섬이 개발되면서 한정 초등학교 행담 분교가 사라지고 주민들도 전부 육지로 거소를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행담도당진시 송악읍 복운리에서 약 1㎞, 평택시 포승읍 해안에서는 약 3.6㎞ 떨어진 아산만 한가운데 있는 섬이다. 행담도 부근의 조수 간만의 차는 약 9.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곳 중 하나이고, 섬 인근에는 넓은 간석지(干潟地)가 있어 섬 개발 이전에는 주민들이 주로 양식업을 비롯한 어업에 종사하였다. 행담도는 조수 간만의 차이가 가장 심한 백중사리 때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이 드러나 육지에서 섬까지 물건을 지고 걸어갈 수 있다는 의미의 ‘행(行)’과 섬이 평소 물에 잠겨 있다는 의미의 ‘담(淡)’이 결합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비롯한 고문헌에는 행담도의 한자 표기가 현재와는 다른 ‘行擔島’로 되어 있다. 현재 전해지는 행담도 관련 이야기를 연관하여 본다면 현재 쓰고 있는 한자 표기인 ‘行淡島’보다는 ‘行擔島’라는 과거의 표기가 더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이 1935년에 쓴 수필 「7월의 바다」에도 행담도가 등장한다. 심훈의 수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배는 아산만 한가운데에 떠 있는 ‘가치내’라는 조그만 섬에 와 닿았다. 멀리서 보면 송아지가 누운 것 만한 절해의 고도다.” 1930년대 이곳에서는 행담도를 ‘가치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섬 이름에 얽힌 구체적인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한낱 조그만 어촌 섬마을이었던 행담도가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서해안 고속 도로 개통과 서해대교의 건설, 행담도 휴게소의 개장과 관련이 있다. 행담도는 2000년 11월 서해대교가 완공되고 2001년 행담도 휴게소가 건설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2015년에는 행담도 휴게소 옆에 대규모 할인 매장이 들어서면서 이용객이 급격하게 늘었다. 특히 이용객의 편의를 위하여 2015년 9월 행담도 휴게소 내에 양방향 이용이 가능한 회차로를 설치하여 당진 지역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행담도 휴게소는 연면적 50,511.43㎡, 건축 면적 44,911.34㎡로 국내 최대 규모의 휴게소이다. 서해대교를 통과하는 차량만도 양방향 합계 일일 평균 10만 대에 이르고, 행담도 휴게소를 이용하는 고객이 연간 1,000만 명 이상이다. 행담도 휴게소는 국내 유일의 섬 안의 고속 도로 휴게소라는 특이성도 가지고 있지만 서해대교당진-평택항 주변의 풍광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항상 앞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야만 하는 ‘고속 도로’의 숙명에 ‘휴게소’라는 쉼표는 분명 우리에게 삶의 여유를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조급함을 잠시 잊고 한숨 돌리는 여유를 가져 보자.

[서해안의 물류 대동맥-서해안 고속 도로]

1990년대 이후 수도권 개발 규제로 인해 2000년대 후반까지 서해안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개발이 이루어졌다. 대중국 무역의 증가로 인한 서해안 시대 개막의 그 중심에 당진이 있었다. 충청남도 당진에 대규모 철강 산업 단지가 조성되었고, 송산 산업 단지, 석문 국가 산업 단지 등에 수도권 규제를 피해 지방으로 내려오는 기업들이 속속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산업 단지의 조성은 필연적으로 물동량의 대규모 이동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물류 이동의 근간인 도로와 항만의 정비가 시급했다. 2008년 기준 1일 평균 물동량을 보면, 석문 국가 산업 단지는 10,144톤, 아산 국가 산업 단지 63,901톤, 현대 제철 및 송산 산업 단지는 11,444톤에 이르렀다. 국내 화물 운송 분담률을 봤을 때 육로[도로]를 통한 이동이 2006년에 76.5%에서 2014년 90.6%로 급상승하는 추세를 보더라도 도로망의 정비는 그만큼 시급했다고 볼 수 있다.

서해안 고속 도로의 개통은 인근에 있는 국도 34호선이나 호남선의 교통량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서해안 고속 도로 개통 이전인 1999년 1일 평균 교통량을 보면, 국도 34호선은 전체 교통량이 10,073대이며, 이 중에서 승용차는 6,267대, 버스 351대, 화물차 3,455대였다. 그런데 서해안 고속 도로가 개통된 후인 2002년 1일 평균 교통량을 보면 전체 9,413대 중, 승용차 5,871대, 버스 250대, 화물차 3,292대로 급격한 감소를 보인다. 호남선도 1일 평균 교통량이 1999년 35,536대에서 2002년 33,617대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1999년과 2002년 사이에 전체 교통량이 14.1% 증가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서해안 고속 도로의 교통량 분담률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서해안 고속 도로서해대교의 개통은 당진 평택항과의 연결로 이어져 중국 시장의 개척에 교두보 역할을 해내 한반도 물류의 흐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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