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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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喪輿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집필자 | 박상천 |
성격 | 장례 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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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 | 나무 |
용도 | 시신 운반 |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시신을 장지로 운반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구.
[개설]
상여는 사람의 시체를 실어서 장지까지 나르는 도구로, 마을마다 마련해 두기도 하고 초상이 나면 개인을 위해 만들기도 한다. 상여를 메는 사람을 상여꾼이라 하며, 대개는 동네 청년들이나 망인의 친구들이 메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상여는 중국의 옛 문헌 『예기 잡기(禮記雜記)』에 구여(柩輿), 상차(喪車)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문헌인 『사례 편람(四禮便覽)』·『상례 비요(喪禮備要)』 등에는 상여(喪輿)라 기록되어 있다.
상여라는 말이 처음으로 쓰인 이재의 『사례 편람』에 따르면, “대여(大與)는 가난한 사람들이 구하기 힘들므로 상여를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쓰여 있다. 『세종 실록(世宗實錄)』·『순종 국장록(純宗國葬錄)』에 따르면 대여는 국장에 사용되는 기구였다고 한다. 상여의 기원이나 발생은 기록이 없어 확실한 내력은 잘 알 수 없다. 다만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상여 한 틀을 공동으로 마련하여,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상엿집을 짓고 그곳에 상여를 보관하였다. 요즘에도 동네의 상포계에서 각출한 비용으로 동네에서 함께 공동으로 사용하는 상여를 마련하여 두는 곳도 있지만, 보통은 값이 싼 일회용 꽃상여를 만들어 사용한다.
[형태]
상여의 모양은 가마와 비슷하나 더 길다. 몸채 좌우에는 밀채가 앞뒤로 길게 뻗어 있어 양쪽 끝에 채막대를 가로로 대고, 앞채막대 좌우로 2줄씩 끈을 달아 뒤채막대에 붙잡아 맨 다음, 중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멜방망이를 좌우로 끼워 사이에 사람이 들어가 끈을 어깨에 멘다.
몸채는 단청식으로 여러 가지 채색을 하고, 네 귀에는 기둥을 세워 위로 포장을 쳐 햇빛을 가리며, 상여 뚜껑에는 연꽃·봉황 등으로 장식한다. 대개 상여 틀을 분해·조립할 수 있게 만들며, 쓰이는 목재는 소나무·자장나무·피나무 등이다. 이들 나무들은 조각할 때 연장발을 잘 받으며, 오래되어도 형태가 잘 보존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출상하기 전날 빈 상여를 메고 마을의 어귀에서나 상가집 마당에서 상여놀이를 하였다. 상여놀이 때에는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내놓는데 실제 상여가 나갈 때처럼 상여소리를 하면서 노는 것이다.
군산시 옥서면 지역에서 상여는 종이꽃 장식이 있는 꽃상여와 여타 장식이 없는 나무 상여가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마을에 상이 나면 사용하는 공동 상여가 있었다고 한다. 비교적 부유한 집에서는 상을 치르기 위해 종이꽃 장식이 있는 꽃상여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출상후 묘지에서 상여를 태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