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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지역 화서학파의 민족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392
한자 唐津地域華西學派-民族運動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남석

[정의]

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전개된 화서학파의 민족 운동.

[개설]

화서학파(華西學派)는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문인을 지칭한다.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당진 지역 민족 운동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배경으로 화서학파와 연결된 성리학적 전통을 들 수 있다. ‘위정척사(衛正斥邪)’로 대표되는 한말의 성리학은 외세 침략에 적극적으로 항쟁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념이기도 하였다. 특히 1919년 당진시[당시 서산군] 대호지·정미 4·4 독립 만세 운동과 같은 치열한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일사분란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주체는 대호지의 유림 세력이었고, 이들의 사상은 화서학파 성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활동 사항]

당진 성리학의 맥은 원래 이이의 기호학파에 있었다. 당진은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충청도의 서북단에 위치하고 있고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경기도와 인접해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자연히 조선 시대 성리학의 기호학파에 깊은 관련을 맺게 되었다. 실제로 이곳에는 기호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이이(李珥)[1536~1584]와 가까웠던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묘와 사당이 있고 이이와 관련된 전설도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이렇듯 율곡 이이는 당진 지방에서 가장 추앙받는 성리학자로 대대로 인식되어 왔다.

한말에 들어서 당진 지역 성리학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유진하(兪鎭河)[1846~1906]였다. 유진하는 경기도 고양군 벽제에서 태어나 1871년 유중교의 문하생이 되어 화서학파에 입문했다. 유중교(柳重敎)[1832~1893]는 화서 이항로의 제자였다. 유진하는 1896년 1월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1842~1915]이 제천에서 의병을 봉기한 소식을 듣고 정창용을 유인석에게 추천하여 제천 의병의 소모장(召募將)으로 활약하게 하는 등 의병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유인석이항로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익힌 화서학파의 중심 인물이었다.

유진하는 1899년 서산시 운산면 거성리 추계 마을로 이사하였다. 이로써 화서학파의 학맥이 서산·당진 지역에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유진하는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김복한과 김상덕 등 인근의 유학자들과도 교유하면서 척사론을 펼쳤다. 유진하가 당진[당시 해미군]의 대호지면 도이리, 의령 남씨 종중에서 설립한 도호 의숙(桃湖義塾)에 초빙되어 강의를 담당하게 된 것은 1906년이었다. 이때부터 도호 의숙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고 학생도 크게 늘어났다. 그 후 1906년 유진하가 역질로 사망하자 도호 의숙에서는 유진하의 문인 심원성(沈遠聲)과 이철승(李喆承)을 초빙하여 강학하게 하였다.

한편 유진하의 문하생으로 주목되는 인물로 정미면 수당리에 살았던 정재학도 있다. 정재학(鄭在學)[1888~1949]은 수당리안국산 아래에서 태어나 15세 되던 1902년, 백형인 정재화와 함께 추계 마을로 유진하를 찾아가 문인이 되었다. 정재학은 유진하의 사후에 유인석을 찾아가 수학하였으며 유인석의 지도하에 『화동사합편강목(華東史合編綱目)』의 간행에 힘을 쏟았다. 1907년 유인석이 만주로 망명하자 황해도까지 따라갔으나 유인석의 지시로 돌아왔고 자정의 생활을 지키면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정재학의 문인으로는 사위인 당진 시곡리의 김진철(金振喆)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이 있었는데, 이로써 유진하의 학문은 당진의 곳곳에 미치게 되었고 화서학파의 정신이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당진 지역 화서학파의 문인들은 유진하를 중심으로 정미면정재학대호지면도호 의숙 유생들이었다. 이들은 이항로의 위정척사 사상을 계승하여 이를 한말 항일 의식을 키우는 정신으로 삼았다. 또한 일제 강점기의 엄혹했던 시기에 ‘대호지·정미 4·4 독립 만세 운동’을 발발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와 같이 화서학파의 위정척사 사상은 일제 강점기 당진 지역 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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