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87
한자 新平縣城
영어공식명칭 Sinpyeonghyeon Fortress
이칭/별칭 신평현 치소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 성재 마을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학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삼국 시대 - 백제 사평현의 치소
소재지 신평현성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 성재 마을 지도보기
성격 현성|치소(治所)
지정 면적 [둘레 약 520m]|[높이 7m]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에 있는 옛 신평현의 행정 치소.

[개설]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은 홍주목(洪州牧)의 월경지(越境地)[소속 읍과 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현의 특수 구역]로 신평현(新平縣)으로 불렸다. 신평현성은 신평현의 치소로 쓰였다. 토사를 다지는 방식으로 둘레 약 520m, 높이 7m 규모이며 해안 방어용으로 구축한 것으로 추측된다. 형식은 삼국 시대의 포곡식 토성으로 백제가 주요한 해안 방어를 위해 축성한 것이다.

[변천]

『세종실록』 지리지 홍주목(洪州牧) 조에는 "신평현(新平縣)은 본래 백제의 사평현(沙平縣)인데, 신라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혜성군(槥城郡)의 영현(領縣)을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평현성사평성으로도 불리는 백제 토성인 것이다. 신평현성 터에서 기와 조각[선조문·격자문]과 토기 조각[무문·격자문·승석문] 등이 출토되었다. 성안 서남쪽에서 출토된 기와 조각에는 '함통(咸通) 11년 강×대사(康×大寺)'라는 양각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870년(신라 경문왕 10)에 '강○대사'란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 부흥 운동 시기에는 백제 부흥군의 주요 군사 기지로 이용되었다. 서기 663년 2월 신라군이 사평성을 포함한 백제의 남부 4성을 공격하여 수천 명의 백제인들을 살해하였는데, 신라군의 공격으로 사평성이 함락되자 백제 풍왕몽산성으로 피난 온 지 3개월 만에 다시 주류성으로 환도하였다. 이후 신평현성은 고려 말과 조선 초 왜구의 침입으로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심지어 현성까지 점령당하기도 하였다.

[위치]

신평현성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 성재 마을 해변 야산에 있다.

[현황]

신평현성은 현재 토성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고, 이곳이 성터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야산으로 방치되고 있다.

신평현성 축성 당시 성문 터로 보이는 작은 골짜기가 있으며, 그 안에는 사공 바위라는 큰 바위가 남아 있다. 사공 바위는 남근을 상징한 듯도 하여 주술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의의와 평가]

신평현성의 존재는 신평현의 행정 치소로 기능하였다는 사실과 신평현이 군사적·행정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서 규모 있는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