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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500
한자 唐津合德堤
영어공식명칭 Dangjin Hapduk Dike
이칭/별칭 합덕 방죽,연호,연제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395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학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9년 4월 20일연표보기 - 당진 합덕제 충청남도 기념물 제70호로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1월 21일~2008년 - 당진 합덕제 충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5차에 걸쳐 조사
특기 사항 시기/ 일시 2017년 10월 11일연표보기 - 당진 합덕제 세계 관개 시설물 유산 등재
현 소재지 당진 합덕제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지도보기
성격 저수지
관련 인물 견훤|왕건|이창구|이정규|나성로
크기(높이,길이,둘레) 1,771m[제방 길이]|높이 7~8m[평지로부터 높이]|8㎞[둘레]
면적 103정보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제70호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백제에서 후백제 시기의 저수지와 방죽.

[개설]

합덕제(合德堤)를 기록한 『여지승람(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의하면 합덕제는 조선의 대표적이고도 유명한 3대 방죽으로 알려져 있다. 합덕제합덕 방죽, 합덕 제언, 합덕지, 연호, 연지, 연제, 하호 등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저수지에 연꽃이 만발하였기 때문이다. 합덕제합덕읍 합덕리, 대합덕리, 성동리에 걸쳐 있으며, 소들강문에 관개하였다.

[건립 경위]

후백제의 견훤왕건의 군대와 전투하기 위하여 군마용으로 우물을 파 놓은 것이 시초였다는 전설과 삼한 시대에 축조되어 있던 것이라는 삼국 시대 축조설이 있으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제방의 서쪽 끝에는 보수할 때의 기록을 적어 둔 중수비가 8기 남아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이 1767년(영조 43년)의 연제 중수비이다. 5차례 정도 수축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454년(단종 2)에 쓰여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홍주목 합덕현 편에는 "연지는 합덕지에 있으며 길이는 3,060척으로 130결의 밭에 물을 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 합덕리 395번지 합덕성당 뒤편에 있다.

[형태]

평지로부터 높이 7~8m, 전체 길이 1,771m, 둘레 8㎞, 면적 103정보[1.021488㎢]에 이르는 큰 방죽이다. 흙을 쌓아 만들었으나 후에 돌을 이용하여 보수한 부분도 보인다. 제방은 직선이나 반원형도 아닌 사행천처럼 구불구불 굴곡이 심하게 되어 있다. 제방 내부는 특이하게도 마치 석성을 쌓듯이 정육면체나 직육면체로 다듬은 돌을 수직으로 축조하였다. 이는 일제 강점기 때 파도에 의한 제방 유실을 막기 위해 축조한 것이라고 마을 주민 이형택은 증언하였다.

[현황]

충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1997년 1월 21일부터 2008년까지 5차에 걸쳐 발굴 조사하였다. 축조된 제방층 및 최근 복토된 동수문지 위치와 수구 높이, 수구 입구 높이, 폭 등을 확인한 결과 토층 하부의 작은 말뚝은 제방 방향에 따라 생토 깊이까지 박는 무리 말뚝공법으로 확인되었고 8개의 수문 중 최북단에 위치한 도리수문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2016년 현재 논으로 개간되었고 제방만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다. 1989년 4월 2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최근 당진시의 노력으로 일부 구역을 복원하였다. 2005년에 인근에 합덕 수리 박물관이 개관하여 합덕제를 중심으로 한국 수리 시설의 역사 등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2016년 현재에도 충청남도 당진시는 면적 대비 생산량이 가장 높은 전국 최고의 미곡 생산지이다. 합덕제의 존재는 당진이 고대부터 소들강문을 포함한 주요한 농업 중심지였음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