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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511
한자 唐津小作組合
영어공식명칭 Danjin Tenant Organiz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4년 3월 27일연표보기 - 당진 소작 조합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30년대 초기 - 당진 소작 조합 해체
최초 설립지 의법 청년 회관 -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면 운산리 지도보기
성격 소작 조합

[정의]

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조직된 소작 조합.

[개설]

당진 소작 조합은 당진군 합덕면과 우강면, 신평면에 거주하는 지식인들이 주도하여 설립한 농민 단체이다. 이들은 재경 지주와 마름의 소작 농민에 대한 억압에 대하여 구체적인 농민 항쟁을 지도하였다. 또한 야학과 강습소를 설치하여 농민들에게 문맹 퇴치와 근대 의식을 심어 주었다. 소작 조합은 1924년 3월에 설립되었고, 해체 시기는 1930년대 초기로 추정된다.

[설립 목적]

당진 소작 조합은 지주와 마름의 소작 농민에 대한 억압과 수탈을 제지하고, 소작 농민을 규합하여 소작 쟁의를 비롯한 구체적인 농민 항쟁을 지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당진 소작 조합은 1924년 3월 16일 동아 일보 당진 지국이 있는 당진군 합덕면 운산리에서 발기회를 개최하였고, 3월 27일 당진군 우강면 창리의 영화 학원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임시 의장은 정형택(鄭亨澤), 임원은 심종관(沈鍾觀)·박병태(朴炳台)·배기영(裵基英)·정학원(鄭鶴源)·성낙훈(成樂薰)·조이환(曺利煥)·유흥렬(劉興烈)·이용구(李容九) 등이 선임되었다. 이들은 혁신 청년 단체인 신합 청년회(新合靑年會) 회원들이다.

그 후 당진 소작 조합은 1924년 8월 10일 합덕면 운산리 의법 청년 회관에서 집행 위원회를 열고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결의하였다. 하지만 일본 경찰은 1925년 1월 29일 당진 소작 조합의 강령이 위험하다고 삭제시키고 집회도 금지하였다. 또한 1930년대 들면서 각종 신문에서 당진 소작 조합에 관한 기사가 없어졌다. 따라서 당진 소작 조합은 1930년대 초에 해체당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당진 소작 조합은 지주의 소작인에 대한 고율 소작료의 인하, 소작권의 보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동아 일보』 1924년 4월 1일자 신문 기사에 의하면, 당진 소작 조합이 창립될 당시에 결의된 내용이 소개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소작료는 답은 4할 이내, 전은 3할 이내.

1. 사음의 간섭을 부인할 사.

1. 소작권은 영구 보장할 사.

1. 간작(間作)은 전답작을 물론하고 소작료의 요구를 거절할 사.

1. 지세, 공과금 급 제언 수축비, 수세 등 일체 비용은 지주의 부담으로 할 사.

1. 소작료 운반은 반리 이상은 불응할 사.

1. 지주, 사음의 무상 부역의 요구를 거절할 사.

1. 소작료는 조(租)와 맥(麥)을 물론하고 정제할 사.

1. 농사 개량을 실행할 사.

1. 수세, 출포, 소작료 기타 부당한 착취를 한 지주에게는 반환을 요구할 사.

당진 소작 조합은 1924년 8월 10일 합덕면 운산리에서 집행 위원회를 개최하고 4개항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한재 피해로 수확이 3할에 불급하는 자는 소작료를 전감하고 기타는 피해 정도에 의하여 체감할 일.

1. 수확예자(收穫豫資)를 방지할 일.

1. 악지주(惡地主), 악사음(惡舍音) 등은 차를 성토할 일.

1. 부정 매매 악행상(惡行商)을 방지할 일.

결국 당진 소작 조합은 무리한 소작료를 거부하였고, 마름의 횡포를 제지하며 소작 농민의 소작권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경작 과정에 들어가는 각종 농사 비용을 지주의 부담으로 할 것과 소작료 운반 등의 문제점을 주장하였다.

[현황]

당진 소작 조합은 1924년 12인의 발기인에서 출발하였고, 창립되었을 때 회원은 287명이었다. 하지만 창립 당시에 청중이 500여 명이 참여하여 농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었다. 『동아 일보』 1929년 1월 12일자 신문 기사에 의하면 1929년 당진 소작 조합의 회원이 758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진 소작 조합이 농민들과의 깊은 신뢰 관계 속에서 발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당진 소작 조합은 당진 지역 소작 농민의 권익 신장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활동은 일제 강점을 극복하려는 농민 항쟁으로 계승되었으며, 현재까지 당진 지역 농민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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